또다시 방송법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법’이라고만 하면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지만 보다 의미를 부가하면 아마 ‘국민정신문화지배법’ 정도가 아닐까. 더욱이 지난해에 정부여당이 국회에 상정했던 방송법은 ‘방송상업화촉진 및 정부지배강화법’으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언론계에서 가장 존경받던 언론인인 월터 리프먼은 처음 방송이 등장했을 때, 컬럼에서 “이제 인류는 두번째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고 말했었다. 대단한 통찰력이며 역시 뛰어난 예지능력이었다.

방송은 탄생초기에 인류에게 영원히 기억될만한 두가지의 출생신고를 했었다. 자본주의의 자기붕괴를 막아내는데 작용한 것이 첫 사례이다. 대공황을 야기시킨 과앙생산품의 거품소비를 촉진시키는 수단으로서 방송의 PR능력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두번째로는 나찌즘을 필두로 한 파시즘을 광적으로 증폭시키는 수단으로 기여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몇째 안에 꼽힐 대중선동가였지만 만일 라디오 방송이 없었다면 대중선동을 통해 한 나라를 지배하고 다시 전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방송은 인류에게 관계되는 모든 현상과 실존을 자신의 개입대상으로 삼고, 이를 관찰하고 개입하고 조작하여 인류의 인식체계에 광범위하고 즉발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대인은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방송과 함께 지낸다.

어린아이들이 2,3살만 되면 방송은 인생의 교사 역할을 하기 시작하며, 사망을 기다리는 노인에게는 무료함을 달래는 마지막 동반자로 기능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방송은 인류를 동반한다.

벌써 이러한 현상을 듣다보면 영리한 정치가와 약삭빠른 장사꾼은 눈치를 챌 것이다. 그리고 욕심 때문에 몸을 떨 것이다. 한마디로 “아 갖고 싶다. 그리고 마음대로 하고 싶다” 라고 말이다. 정보의 독점지배는 권력이며 권력은 돈이다. 방송은 인류에 대한 정보지배권을 가장 확실하게 제공하는 수단이다.

이제 한국의 방송은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 전망은 극히 어둡다. 아직 군사독재정권의 성격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현정권에서는 방송의 정치적 지배력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한국의 천민자본은 ‘장사수단’으로 방송의 소유를 원하고 있다.

여기에 소유와 경영, 그리고 소유와 편집권이 전혀 분리되지 못한 신문사들까지 방송의 소유를 원하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세부류의 힘있는 자들이 곧 재상정될 정부여당의 방송법을 주무른다.

국민들은 왜 지금의 방송이 잘못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방송법 속에 대통령이 KBS와 MBC의 사장을 마음대로 임명하고 해임시키는 권능이, 청와대 비서관이나 공보처장관이 방송사 간부진 인사에 제멋대로 개입하고 방송내용을 전화 한통화로 바꿀 수 있는 권능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정치와 자본이 천민화 된다는 말은 그와 동시에 국민도 천민화의 길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민에게는 한번의 기회가 있다. 7월에 국회에서 상정될 ‘방송법’의 개정방향이 우리 국민의 완전한 천민화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한번쯤 자신들의 운명들을 결정할 많지 않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여기서 국민이라는 범주에는 공보처 관리도, 국회의원도, 자본가도, 언론인도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잘못된 방송으로 인한 장기적인 피해는 그들의 후손들만 제외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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