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부부 싸움을 하면 자식 교육에 바람직하지 않으니 부부 싸움을 삼가하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과속은 교통사고를 낼 위험이 있으니 과속을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환절기엔 감기에 걸릴 염려가 있으니 환절기 건강에 유의하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경찰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

이 ‘대통령은’으로 이어지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것이지만, 완전히 허구는 아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잘 들어 보시라. 대통령 관련 뉴스엔 정말 하나마나 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짜증이 난다.

그리고 그 다음엔 그런 보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자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된다. 앵커가 한두마디 처리하고 넘어가도 될 대통령의 의례적인 행사 발언마저 기자를 시켜 뉴스를 만들어내라니, 기자로선 세상에 그런 고욕이 없을 게다.


‘땡전뉴스’와 코미디

왜 그래야 하나? 그게 오히려 대통령을 욕되게 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5공 시절의 ‘땡전 뉴스’는 오늘날엔 코미디 감이다. 그러나 그 때엔 자못 진지하고 심각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과 방송사 경영진은 ‘땡전 뉴스’라는 희대의 코미디가 진짜 코미디보다 더 웃긴다는 걸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코미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번 올림픽 축구 한일전 때에 김영삼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6분간의 해프닝은 일부 언론이 지적한 그대로 “‘경장히’ 길었던 한밤의 6분 코미디”였다. 놀랍게도 김대통령은 물론 김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과 방송사 경영진은 그 코미디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코미디는 때때로 작은 규모로나마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의 ‘대중매체 민주주의’ 체제하에선 ‘권력 중독’은 곧 ‘대중매체 중독’을 의미한다. 대통령만 그러는 게 아니다. 정치권에서 이름 깨나 있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라. 모두들 어떻게 해서든 뉴스를 만들어 내느라 안달이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대중매체에서 사라졌다 싶으면 한마디 푹 던져서 뉴스를 만들어낸다. 그걸 가리켜 ‘언론플레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 ‘대중매체 중독’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4·11 총선 직전 어느 정당에 들어간 거물급 인사들이 정말 자기에게 대권이 올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까 하고 의아해 한다. 그러나 그런 의아심도 ‘대중매체 중독증’을 이해하면 쉽게 풀린다. 대중매체의 각광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 앞에선 이성은 마비된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버림받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건 ‘잊혀진 여인’이라고 말이다. 대중매체로부터 잊혀진다는 건 참을 수 없는 고통이요 모욕인 것이다!


“잊혀지면 죽는다!

매카시즘의 주인공인 죠셉 매카시는 상원에서 ‘비난’ 결의를 받은 이후 영향력이 땅에 떨어지자 언론으로부터도 외면받았다. 그는 알콜 중독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1957년에 사망했다. 그는 죽기전 어느 신문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의 정치와 정책은 당신들이 내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데 왜 나에겐 지면을 할애하지 않느냐?”

매카시가 의아해 한 건 당연하다. 바로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언론은 매카시의 말이라면 무조건 1면을 할애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 매카시의 사망 원인은 알콜 중독이 아니다. 대중매체 중독이 더 큰 이유다. 대중매체라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은 그 마약이 공급되지 않을 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잃는다.

한동안 ‘주사파 사냥’을 외쳐 온 우리나라 어느 대학의 총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어느 날 갑자기 남북 대학 총장 회담을 제안했던 것도 대중매체 중독이 얼마나 가공할 병인지 잘 말해주는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그는 그 덕분에 텔레비전의 톱 뉴스와 신문의 1면 머릿기사에 화려하게 복귀할 수는 있었
지만, 남북 대학 총장 회담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걸까?

나는 PD시절 싹수가 노란 어느 개그맨에게 개그맨을 포기하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그 때 그 개그맨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강선생님이 잘 몰라서 그렇지, 방송에 한번 중독되면 발을 빼기가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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