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만화’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지난 5월 12일자 세계와 조선의 만평은 다른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발상법과 묘사법이 똑같다. 각각 자민련의 ‘제3후보 추대론’과 외교문서 변조사건으로 소재만 달리했을 뿐 이 두 만평은 상어라는 돌출변수의 출현에 놀라 허우적대는 등장인물의 표정까지 동일하게 처리하고 있다.

발행일이 같은 것으로 미루어 이 쌍둥이 만화는 우연의 소산으로 넘겨버려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우연이 너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되풀이되는 우연은 더이상 우연이 아니다. 그건 필연이다. 그것을 필연으로 만드는 동인은 시사만화의 고루한 발상법이다.

사실 이 ‘쌍둥이 만화’도 고루한 발상법이 빚은 필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상어는 지금까지 돌출변수를 비유하기 위해 시사만화가 즐겨 써오던 소도구이다. 이 점을 주지하면 이 쌍둥이 만화의 출현에 의아해 할 이유는 없다.

상어를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바다를 무대로 삼아야 하고, 무대가 바다이니 등장인물은 헤엄쳐야 하고, 상어가 나타났으니 당연히 놀라 허우적대야 하고…. 대충 이런 식으로 정식화되는 묘사법을 알고 나면 의아함은 걷히고 허전함만이 남는다.

시사만화의 고루한 발상법은 한두 군데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를 다룬 시사만화들도 고루하고 진부한 발상법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시사만화가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를 풍자하기 위해 동원한 소도구는 철새. 국민(‘딱부리’, 5월 15일), 동아(‘나대로 선생’, 15일)를 비롯해 문화(만평, 15일), 조선(만평, 16일), 중앙(‘왈순아지매’, 15·17일) 등이 철새 의원들을 등장시켜 의원 빼가기 정국을 풍자하고 있다.

갈대와 같은 정치인을 철새에 비유하는 방식은 너무 많이 써먹어 이젠 ‘고전’이 돼 버린 것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15대 국회의원 공천 과정을 풍자하는 만화들만 뒤져봐도 ‘철새 발상법’은 지겨울 만큼 숱하게 많다.

돌출변수는 상어, 갈대 정치인은 철새라는 식의 진부한 비유법에서 배어나오는 것은 시사만화의 무사안일주의이다.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소도구 몇개에 시사문제를 끼워맞추는 안일한 태도가 쌍둥이, 또는 ‘닮은꼴’ 만화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왕 썰렁’의 첨단을 달리는 시사만화, 그래서 독자들의 ‘짜증지수’만을 높이는 시사만화의 이면에는 실험정신과는 담쌓은 채 60년대식 유머에만 안주하고 있는 작가정신의 부재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면 너무 지나친 평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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