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그 19기를 타고 망명한 이철수 대위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미국 국방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르다”며 정례 브리핑에서 즉각 부인해 머릿기사로 대서특필했던 우리 언론에 일격을 가했다.

미국이 조선(북한) 망명자들의 발언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면 부인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신속하게 이대위의 말을 부인한 배경과 그 의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쪽 반응이 충분히 예측가능했다는 견해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 그간 조선을 공개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남·북간 협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능한 조선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미국쪽 입장에선 이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과 언론의 냉전적 보도태도에 큰 우려를 가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지난 5월23일(미국 현지시간) 미국무부 니콜러스 번스 대변인은 정례브리핑 자리에서 이철수 대위 망명과 조선 경비정의 휴전선 침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번 사건이 4자회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서도 안된다”고 못박았다.

24일자 뉴욕타임즈지도 “이 사건은 북한 지도자들을 격노케해 4자회담 제안의 수락을 더욱 주저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정부와 미국언론은 일단 이번 사건이 남북의 미묘한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더 이상 조선을 자극하지 않도록 한국정부의 자제를 바라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지난 28일 이철수 대위의 기자회견을 대서특필하면서 “7일만에 남한 점령”, “전투기의 전진배치” 그리고 “식량은 우선 군비로 돌린다”는등 조선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들을 여과없이 보도했다.

미국방부 케네스 베이컨 대변인의 논평은 이런 긴장상태을 완화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읽힌다. 베이커 대변인은 “북한의 군사훈련 징후를 보지 못했다”고 논평했다. 워싱턴의 한 특파원은 이번 논평이 “미국인들 일반이 느끼는 것 그대로이며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논평 자체가 이례적이라기 보다는 이철수 대위의 발언 내용이 자신들이 점검해온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또 이번 사건으로 정부의 대북정보가 미국정부와 크게 다른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이철수 대위에 대한 기자회견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이루어졌고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한 기자에 따르면 안기부가 제공한 자료 이외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대위가 답변을 회피했다고 한다.

결국 보도된 내용들은 대부분 안기부가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는 말이다.
워싱턴의 한 특파원은 “정부의 대북정책 입안·집행이 워싱턴 특파원들에게도 큰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며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을 꼬집었다.

그는 또 수해지원 등 당면 대북사안과 관련해서는 “국내정치상황만을 고려해 대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들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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