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북한)출신 망명자들이 쏟아 놓는 북한 관련 증언은 모두 믿을만한가. 정보기관이 주최하는 이들의 기자회견 내용을 사실검증 없이 중계하는 언론의 태도는 정당한가.

지난달 23일 미그기를 몰고 망명한 조선군 이철수대위의 28일 기자회견은 이같은 물음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이대위의 이날 기자회견 내용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이대위는 조선이 △개전 7일만에 한국 전역을 점령할 목표로 전쟁계획을 수립했다는 것과 △기습공격을 위해 지난 95년 10월께 2백70여대의 전투기를 전방에 전진배치했으며 △지난 4월부터 비무장지대 내 지뢰를 해체하고 병력을 전진배치했다는 등 최근 조선의 전쟁준비 상황을 폭로했다.

조선이 전쟁 준비에 혈안이 돼있다는 기자회견의 결론은 다른 망명자들의 그것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대위가 ‘증거’로 제시한 조선의 군사 활동 상황은 국민들의 ‘전쟁불감증’에 경종을 울리는 차원을 뛰어 넘어 조선의 호전적인 ‘전쟁광’들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대위의 ‘충격적인’ 기자회견에 이어 나온 미국 국방부 베이컨 대변인의 지난달 28일 논평은 자못 흥미롭다.

평소 조선 정책에서 미국내 보수주의 매파의 ‘총대’를 메온 국방부가 이례적이고도 신속하게 발표한 이대위 기자회견 관련 논평의 골자는 “이 조종사의 정보는 미 국방부가 지난해 관찰을 통해 입수한 정보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논평은 “우리(국무성)는 지난 6∼12개월 동안 (조선의) 활발한 군사징후를 보지 못했다.

사실은 정반대로 군사훈련은 특히 지상군에 있어서 정상시보다 현저히 줄어드었다”면서 “이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이대위의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대위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합동참모본부 발표에 따르면 조선공군이 휴전선 일대 3개 기지에 전진배치한 전투기 숫자는 모두 1백15대였다. 이대위가 주장한 2백70여대와는 무려 1백50여대 이상의 차이가 난다.

또한 이대위가 조선군이 휴전선내 지뢰를 해체하고 병력을 전진배치했다고 주장한 대목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대위가 정치강연회에서 전해 들은 것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국내외 대북 정보 취급기관의 논평과 분석 내용은 이대위 증언의 신뢰도에 상처를 입히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대위의 ‘상처입은’ 증언은 아무런 여과없이 보도됐다. 3개 방송사는 28일 이대위의 기자회견 상황을 생중계했으며 신문들은 당일 석간과 이튿날 조간에 이대위 증언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이대위의 발언 내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검증을 시도한 언론은 없었다.

그간 언론계 내에서는 조선 망명자들의 증언을 다룰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던 터다.

특히 망명자들이 신분 특성상 조선에 대해 과장되거나 개인 감정이 개입된 주장을 내세울 수 있으므로 언론이 이들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지난 94년 5월 망명한 강명도씨가 기자회견에서 ‘북 핵폭탄 5개 보유설’를 주장해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자 미국이 시급히 부인 논평을 발표해 진화에 나서는 등 해프닝이 벌어진 적도 있다.

그러나 이대위 망명 기자회견 보도 역시 고질적인 ‘북한기사 키우기’가 재현됐다. 언론사 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대위의 증언 내용 가운데 중요부분을 요약한 기사 1건, 기자회견 전체내용 1건 등 적어도 2건에서 많게는 5건의 기사들이 신문 지면을 차지했다. 안보상업주의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이에 따른 역효과로 언론은 또다시 남북한간 긴장완화와 화해분위기 조성에 역행한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대북 적대감만을 고취시켰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한 통일원 출입기자는 언론의 고질적인 안보상업주의를 이렇게 꼬집었다. “언론은 북한과 관련된 기사를 다룰 때 독자들로 하여금 항상 공포, 전쟁, 위기, 불안정 등의 단어들을 연상케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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