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KBS의 일선기자·PD들에게 감정이 없다. 현장의 분위기를 제작책임자에게 전달해달라는 의미에서 제지하는 것이다."(강선열씨·노무현 전 대통령 덕수궁대한문 분향소 자원봉사자)

2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엿새째에 접어들면서 서울 덕수궁 대한문  분향소는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대한문 앞 통로를 발디딜 틈 없이 메워가고 있다. 지난 27일 오전 4시 현재까지 모두 31만 명이 조문했으며 27일 밤 11시까지만 대략 15만 명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했다.

시민들 KBS에 왜 분노하나 "불과 몇년전 국민의 방송이 지금은 권력의 방송으로…배신감"

   
  ▲ 국민장의 마지막 날인 29일이 다가올수록 추모행렬은 늘어나는 듯하다. 27일 오후 8시께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로 가는 줄이 시청역 안에서 뱀꼬리처럼 구비치며 이어진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자원봉사를 맡고 있는 최형호씨는 이날 밤 "발인(영결식) 전날인 28일엔 지금까지 방문했던 사람들을 다 합친 조문객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밀려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때문에 28일에도 시청 광장을 열지 않으면 시청앞 도로로 자연스럽게 밀려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7일 밤에도 대한문 덕수궁 앞을 찾은 많은 시민들은 검찰과 언론에 대한 격한 불신을 드러냈고, 특히나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언론의 책임론을 너나없이 거론했다. 무엇보다 내부에서도 극심한 반발을 사고 있는 KBS 취재진은 이날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촬영하지 못했다.

최씨는 "우리가 아무리 말려도 시민들이 통제가 안 된다"며 "자원봉사자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 KBS가 공정한 방송을 하려할 때가 돼서야 시민들이 KBS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26일 오후 2시께 서울 대한문 앞 추모장소안에서 리포팅하려는 KBS 취재진에게 추모객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시민 자원봉사자가 취재진을 정중히 밖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노 전 대통령 서거 첫날부터 KBS의 취재를 거부한 시민들과 일부 자원봉사자는 이후에도 KBS 취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

강선열씨 "네이버가 아닌 KBS가 평정된 상태…일선 기자에겐 불만 없어"

여의도에서 자영업을 하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강선열(49)씨는 "KBS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뢰도 1위인 국민의 방송이었으나 지금은 권력의 방송이 됐다"며 "애정을 가진 많은 국민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 넓지 않은 서울시립미술관 앞에만 주최쪽 추산 1만 여명이 모여 추모문화제를 이어갔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강씨는 KBS 취재제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의미이다. KBS는 국민이 다 지킬 수 없다. 방송 종사자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런데 몇 개월간 KBS의 행태는 실망을 금할 수 없게 했다. 대선전에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네이버가 평정됐다는 말을 했다는데 지금은 KBS가 평정된 상태"라고 비판했다.

강씨는 KBS의 보도태도에 대해 "연말 보신각 타종 조작방송을 시작으로 최근의 KBS 보도는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다. 많은 지각있는 시청자들은 KBS의 보도와 프로그램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거칠게 비난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일선 기자 PD들은 현장에서 많이 고생하고, 치열하게 취재하려고 하고 우리는 그걸 안다. 우리는 일선 기자들에게 감정이 없다. 아무리 잘 찍어가면 뭘하느냐. 데스크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저널리즘이 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취재를 거부하는 것이다. 안에서 편집권자와 싸우라는 것이다. 필드의 분위기를 제작 책임자에게 전달해달라는 의미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고 있을 때의 KBS의 보도태도에 대해 "조중동이나 문화일보와 다를 게 없었다"며 "그런 반열에 KBS가 올라섰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 권력에 대해서는 전혀 칼을 들이대지 못한다"며 "현 정부에 의해 평정됐는데 어찌 산 권력에 손을 대겠나. 그저 입맛 맞추는데 급급한 정권의 나팔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선 기자·PD들이 기자제작진과 싸워달라는 의미…사랑의 매로 받아들여야"

그는 최근 기자·PD·노조까지 KBS의 노 전 대통령 서거 방송을 비판하며 투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우리가 바라는 게 바로 그런 것"이라며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취재해도 편집권자와 맞닥뜨릴 때 제대로 방송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이 고민해야 한다. 이 곳 현장에 계신 분들의 대다수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조언했다.

향후 KBS의 취재도 일체 거부할지에 대해선 장씨는 "자원봉사자 내부에서 취재를 원천봉쇄할지, 허용할지, 또 PD들과는 분리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지난 26일 밤 <시사360>팀이 6m 카메라를 갖고 촬영하다 발각돼 쫓아냈다"며 "그러나 밤 11시쯤 돼서 김모 PD가 다시 와서 '5∼6분 분량을 방송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2시간 반은 찍어야 가능하다. 우리는 편집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만들겠다'고 다짐하길래 최대한 취재지원을 해줬다. 이는 실험적으로 허용한 것일 뿐 향후엔 이것조차 보장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장씨는 "우리는 가급적 KBS 취재진과 만나면 '발각되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기자들에 불만은 없다, 물러서 달라'고 정중히 요구하지만 다시 취재하러 왔다가 불상사가 생긴다"며 "우리가 이런 불상사를 통제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런 비난의 화살을 사랑의 매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다시 KBS가 진정한 신뢰도 1위를 되찾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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