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정을 위반한 것은 북한만이 아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한국이나 미국도 휴전협정을 위반했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이를 묵인, 방조하고 있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는 9일 한양대 언론대학원에서 특강을 갖고 한국언론이 상대주의적 관점을 유지하지 못한채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리영희 교수가 제기한 한국측과 미국의 휴전협정 위반 사례는 두 가지.

우선 지난 93년 미국이 한국에 작전지휘권을 반환한 것은 지난 53년 5월 27일 체결한 휴전협정 61조와 위배된다는 것. 리 교수는 이 조치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양한 획기적인 측면이 있지만 ‘휴전협정에 대한 수정, 증보는 쌍방사령관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합의 없는 변경은 휴전협정 위반’이라는 조항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렸다.

리 교수는 휴전협정 체결의 당사자인 미국이 휴전협정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정전위원회 대표를 한국측에 넘기자 조선측이 ‘휴전협정’ 위반을 지적하며 정전위에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같은 조항을 문제삼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리교수가 문제를 제기한 또 하나의 조항은 휴전협정 63조. 이 조항에 따르면 휴전협정 당사자들은 정전협정 90일 이내에 휴전협정 체결자들보다 한급 높은 국가대표자들간의 정치회담을 가지며 특히 이 조약 체결과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국군대들은 모두 철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공군은 58년 10월을 기해 북측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했지만 남측은 미군이 현재까지 여전히 주둔하고 있으며 사실상 통치자들간의 회담인 국가대표자들과의 정치회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리교수는 이것 역시 조선 입장에서 보면 휴전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할만한 근거가 있다는 것.

리 교수는 이러한 미국의 휴전협정 위반이 고도의 정치적 전략이 필요한 외교무대에선 어느정도 전술적 카드로 사용될 수 있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은 이와 관련한 조선측 입장도 균형있게 보도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선측의 잇따른 비무장지대 무력 침투도 그 자체가 한국에 군사적인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기보단 43년간 미뤄져온 평화협정 체결을 가속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리교수는 진단했다. 그럼에도 한국언론이 조선측의 휴전협정 파기와 도발만 일방적으로 강조한 것은 상호주의에 입각하지 못한 ‘유치한 보도행위’라고 못 박았다.

리교수는 이와함께 한국언론의 대북 보도 문제점으로 △광적인 반공주의 △맹목적인 애국주의 △인과관계를 무시한 일회적인 접근 △비과학적인 주관주의 △조선에 대한 몰지식 △미국 숭배사상 등을 들고 하나의 사건을 보기위해 입체적인 감각을 동원해야 균형적이고 객관적인 대북 보도에 한걸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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