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권오기 통일부총리는 ‘언론은 4류’라고 발언(본지 51호 1면보도)해 파문을 일으켰다. 언론인으로서 평생을 살아온 그가 자신의 고향이자 ‘삶의 전부’였던 언론을 이렇게 평가한 이유는 무엇인가. 권부총리의 해명과 사과로 파문은 일단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냉철한 검증이 필요하다. ‘정치보다 더 나쁜 4류’라는 멍에는 던져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추측·오보산실’ 불명예

권부총리는 통일원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조선(북한)보도와 관련 “추측및 오보가 많다” “언론이 틀을 짜놓고 사실을 억지로 꿰맞추고 있다”면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 대북보도에 대한 강한 불만이 ‘언론은 4류’로 표현됐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하루뒤인 5월3일 오인환 공보처장관도 비슷한 주문을 했다. 해외공보관장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워싱턴에 들른 오장관은 이날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문제에 관한 오보가 많아 정부가 곤혹스런 경우가 많고, 미국 정부도 한국언론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북한 문제 보도는 국익에 관련된 문제인만큼 신중하고 사려깊게 처리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특종경쟁은 다른 사안을 놓고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 수위와 형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언론의 조선보도에 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한 사람은 정부 통일정책을 좌우하는 통일부총리고 한 사람은 정부 대변인인 공보처장관이다. 두 사람이 차지하는 정부내 위상과 대표성을 고려할때 정부 전체가 대북보도에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리는 없다.

PC통신망 하이텔에 있는 ‘열린정부’란 방에는 정부 부처가 보도된 내용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정정하거나 해명하는 란이 있다. 지난해말부터 최근까지 이곳에 올라온 정부 각 부처의 정정및 해명 수록건수는 모두 59건. 이중 3분의 1에 가까운 17건을 통일원이 냈다. 다른 부처가 대개 2-3건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다. 그 내용을 잠시 훑어보자.

지난 3월28일 일부 언론에 보도된 ‘북 총리급 남북회담 제의’ 보도에 대해 통일원은 “북측이 총리급 회담을 위시해서 새로운 제의를 해온 것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탈북자 문제와 관련 언론에 ‘중국등 현지에 수용소 설치’ 또는 “한강 이북의 초중학교 시설 2백70개를 임시 수용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보도된데 대해서도 ‘검토한 바 조차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4자회담 제의 등 최근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보도에 대해서도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뻔한 사실’조차 부인하는 경우가 적지않기 때문에 통일원이 낸 보도내용 정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러나 어떤 항의도 할 수 없도록 ‘꼼짝못하게’ 대북관련 기사가 작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기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무제한의 언론자유

조선보도의 궁극적 취재원은 조선이다. 바로 이 취재원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조선보도의 근본적 제약이 존재한다. 다른 기사에 비해 대북보도가 오보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확인해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역으로 기사를 쓰기 편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항의할 사람도 없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위축된 5공시절 기자들 사이에서는 “언론자유가 전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북한에 관한한 무제한의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는 지금도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조선보도는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두고 그 밑에 숨어있는 ‘빙산’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흐름과 추세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이다. 전문성과도 연결된다. 오보등 조선보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대체로 이 때문이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언론이 북한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일과성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모든 문제를 북한체제 붕괴나 이상징후와 연결시키는 보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조선체제나 남북관계를 ‘변화’라는 틀에 짜맞추다보니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권부총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언론이 통일문제를 사건성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말처럼 조선보도는 무리하게 ‘사건’을 만드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4월23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북 자본주의 논리 대폭 도입’은 조선 김정우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의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체제가 됐다”는 별로 새롭지 않은 내용을 확대해석해 ‘사건’을 만든 경우다.

역시 한국일보가 지난 9일 보도한 “중국 이붕총리와 김정우 조선 대외경제위 부위원장이 만나 4자회담에 관해 입장을 교환했다”는 것도 불확실한 취재원으로부터 들은 소문을 기사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4·11 총선전 정국을 강타한 ‘북풍’의 경우 판문점 무장경비병 투입등 조선의 의도적인 정전협정 위반 내용을 연일 크게 보도했던 언론은 총선직후 일어난 조선경비정 2척의 영해침범 사실은 눈에 띄게 축소했다. 일관성이 없는 보도태도다.


서글픈 외신 우대

얼마전 워싱턴발로 타전된 미국 CNN의 평양지국 허가, 코카콜라의 조선지사 설치도 오보의혹을 사고 있다. 이 보도가 나간후 두회사는 즉각 이를 부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보도가 오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선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오보의 ‘개연성’이 높은 기사다. 일부 워싱턴특파원들은 ‘경험상’ 이들 보도가 확인되지 않은 첩보를 그대로 옮겼거나, 이종혁 조선 노동당 부부장이 세미나 참석차 이들 회사의 본사가 있는 애틀란타에 간 것과 두회사가 내부적으로 조선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을 ‘머리속에서 합성’한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신보도에 대한 우대도 심각하다.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도 외신을 타고 들어오면 비중있게 처리된다. 한 통일원기자는 “신선도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 휴지통에 버린 자료가 외신을 인용해 크게 보도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외신에 보도된 것을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한 조선담당 기자는 이를 ‘외신사대주의’라고 혹평했다.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문씨는 그간 ‘친북인사’로 분류된 기피인물이었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한 보도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난 6일 언론은 이례적으로 “조선 김일성 전주석의 3년상이 끝나는 내년 7월 김정일 당비서가 주석직을 승계할 것”이라는 문씨의 말을 주요기사로 처리했다.

달라진 것은 문씨의 말이 일본 아사히신문에 먼저 보도됐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은 이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기사를 처리했다. 문씨는 이전에도 말지등에 조선 내부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을 발표했으나 이를 받아서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중심없는 통일정책도 화근

언론사 통일팀이나 외교안보팀에 속한 조선담당 기자들은 대체로 권오기부총리의 4류 발언은 문제가 있지만 대북보도에 대한 지적은 경청할 대목이 있다는 분위기다. 오보가 많다는 것에 대해서도 ‘상대적’이란 단서를 달아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원이나 외무부 기자실이 ‘오보의 산실’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일관성 없는 통일정책이나 정보은폐 등 정부쪽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 내부의 요인으로는 조선관련 지면과 뉴스시간은 늘어났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문역량을 키우지 못한 것이 대북보도를 뒤틀리게 하는 주요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데스크의 무리한 주문도 적지않은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굵직한 정치기사가 없을때 조선관련 기사를 ‘땜질용’으로 집어넣기 위해 사실을 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한 외무부 출입기자는 “다른 기사는 10가지 사실을 확인해서 2~3개를 쓰지만 조선기사는 1가지 사실에 9개의 추측을 보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외무부를 출입했을때는 이것저것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러다보니 되는 기사가 없었다. 정부 당국자 어느 누구도 속시원하게 확인해주는 경우가 없었다. 실제 시인보다 부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이 추측보도를 낳는 온상이라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조선관련 기사를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통로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조선문제에 관해 나름대로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통일팀이나 외교안보팀이다. 그러나 극히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고는 이들의 자문을 거쳐 기사가 게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정부 통일정책이 술취한듯 흔들리는게 가장 큰 문제다. 정치상황과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다보니 감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뭐든지 감추려든다. “내가 알고 있는게 사실인지 아닌지가 분명하지 않다보니 기자들에게 딱 부러지게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는 한 관료의 말은 기자들이 당면한 취재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선문제에 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은 통일원은 기자들 사이에서 ‘정보’도 ‘힘’도 없는 부처로 통한다. 조선관련 기사중 통일원이 1차 정보원이 되는 기사도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미미하다. 조선 내부 정보는 안기부가 장악하고 있고, 통일정책은 청와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특히 통일정책은 ‘밀실’에서 결정돼 ‘깜짝쇼’ 형식으로 발표되는게 관행이었다.

조선담당 기자들은 이 밀실과 깜짝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갖고 있다. 추측과 과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대북관련 오보는 정부와 언론의 합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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