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코스였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지난 2월 삼성그룹 협찬으로 미국 및 남미 지역을 10박 11일간 돌고온 한 기자의 소감이다. 미국의 실리콘벨리, 마이애미, 멕시코, 브라질 상파울로 등을 방문한 해당 기자는 공식 일정에는 그 누구보다 충실한 ‘취재’ 활동을 벌였다.

물론 이른바 ‘밤의 인프라’ 취재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동료기자들과의 포커,나이트클럽 순회 등이 비공식 일정의 주요 코스다. 용돈도 받았다. 홍보실 관계자가 활동비조로 미화 1천달러(한화 80만원)씩을 지급한 것이다. 용돈 지급은 기업이 제공하는 해외취재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취재원 제공의 해외취재는 그간 이상론과 현실론이 팽팽히 맞부딪쳐온 사안이다. 해외 취재등에 인색한 언론풍토에서 비록 취재원이 제공하는 프로그램 이지만 ‘국제적 감각’을 익히기 위해 정도를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해외취재를 다녀 오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 현실론의 주요 논거였다. 이에 비해 취재원과의 유착, 비윤리성 등을 들어 취재원 제공의 해외취재는 마땅히 가지 말아야한다는 반대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에 접어들어 이러한 반대론이 현실론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분위기다. 올해들어서만도 현대, 삼성, LG, 동아그룹 등 각 계열 기업들이 번갈아 가며 2-3차례 기자들을 해외에 보냈다. 삼성의 경우는 주간지 기자들의 시찰기회도 따로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등 ‘기자들 모시기’에 강한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조선 등 일부 신문사들은 취재원제공의 해외취재를 오히려 적극 권장하기까지 한다. 창간이래 이를 금기시해왔던 한겨레도 엄격한 윤리위 심사를 거쳐 일부기자들의 기업제공 해외취재를 부분적으로나마 허용하고 있는 추세다.

상황이 이처럼 반전되면서 기업 제공의 해외취재 기회를 활용하지 않으면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는다는 항변도 터져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기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방식’으로 해외취재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해외 현지에서 ‘큰 건’을 터뜨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각 기업들의 해외합작사업이 늘어나면서 대규모 전략적 제휴, 현지투자 계획등을 현지에서 발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동행하지 않은 기자들은 눈 뜨고 물을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장단등 그룹내 대규모 임원진이 기자들과 합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룹총수와의 인터뷰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기자 입장에선 이들과 친분을 나눌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올해 1월 LG가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개최한 ‘경진 대회’같은 행사가 대표적이다. 이 행사를 동행 취재했던 한 기자는 “취재원 확보차원에서 상당한 소득이 있었다. 그룹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의 실체를 가까운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속내용은 취재와 거리가 먼 경우가 대다수다. 낮에는 공식일정에 따라 움직이지만 밤에는 ‘관광’과 해당사 임직원들과의 ‘술자리’가 주요 프로그램이다. 해외취재를 동행한 홍보실 직원이 떠날때는 ‘기자님들’을 연호하다 돌아와선 ‘선배님’으로 호칭이 바뀐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돈다. 한 기자는 “기사 안 쓰는 세상에서 마음 푹 놓고 쉬다 돌아오는 재충전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취재원 제공의 해외취재에 대한 기자들의 경계의식이 ‘무장해제’ 당한 솔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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