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학 입시부터는 서울 20여 대학의 원서를 지방 5개 도시에서도 접수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 참 잘한 일이라고 손뼉을 쳐야 마땅하겠건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지난 95년 11월 현재 수도권의 면적은 전 국토의 11.8%에 지나지 않지만, 이곳에 사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45.3%에 이른다. 언론은 3년째 서울 인구가 줄고 있다고 기사 제목을 뽑고 있지만, 그렇게 진실을 왜곡해서야 쓰겠는가. 우리는 지금 ‘경기도의 서울화’를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지방은 어떠한가? 지방 가운데 가장 낙후된 곳중의 하나인 전북을 살펴 보자. 지난 1966년 2백52만명을 넘어 섰던 전북 인구는 95년 11월 현재 1백90만명으로 줄어 들었다. 지난 몇년간 전북도민이 그토록 우려하던 2백만대가 무너지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전북과 같은 지역을 희생해서라도 서울이 잘되고 나라가 잘된다면 말도 않겠다. 서울의 교통지옥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더욱 큰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국부 가운데 가장 큰 덩어리를 수도권 교통난 해소에 꼴아박고 있다.

이 나라의 집권 엘리트들도 그게 문제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았던 모양이다. 1964년에 만들어진 대도시 인구 집중 억제책은 지난 84년 수도권 정비계획법으로 탈바꿈해 국토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로 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빈 껍데기다. 그건 재벌과 정치인들의 로비 앞에선 있으나 마나 한 허깨비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신문을 유심히 읽는 사람이라면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1년에 대여섯 차례 각종 ‘예외’가 남발되는 걸 목격했을 것이다.

그 ‘예외’의 가장 큰 명분은 ‘국제경쟁력’이다. 국제경쟁력을 위해 수도권에 첨단 산업의 공장을 더 지어야겠다는 것이다. 그거 말된다. 기업 경영에 유리한 모든 조건이 서울에 다 몰려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 공장과 지방 공장 사이에 경쟁력 차이가 생기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국토의 균형 개발을 꾀한답시고 공장을 자꾸 지방으로 내몰면 결국 우리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주장에 일리는 있다는 말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재벌들만 그러나. 이젠 경기도까지 들고 일어났다. 경기도는 경기도가 언제까지 서울을 위한 희생물이 될 수는 없다며 아예 노골적으로 수도권 정비계획법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그것도 말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수도권 정비계획법을 없애 버려? 그리고 수도권이 정말로 폭발해 저절로 인구가 분산되기를 기다려 봐? 아서라. 그랬다간 우리 모두 다 죽는다.

방법이 하나 있다. 대학이다. 대학을 지방으로 내몰아야 한다. 수도권 인구 집중의 가장 큰 요인은 대학이다. 대학 이상 큰 인구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없다. 대학이 지방에 있다고 해서 국제경쟁력이 약화된다고 말할 사람 있는가. 우리 대학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산업전선의 일선에 있었다고 감히 국제경쟁력을 말하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김영삼 정부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계속 늘려왔다. 그건 정말 미친 짓이다. 학연을 이용한 대학들의 로비에 더이상 놀아나지 말라. 김영삼정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꽁꽁 동결하라. 아니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정원을 줄여라. 그리고 지원은 오로지 지방대학에게만 해주라. 또 국제경쟁력 타령을 할 터이니 공대에만 해주라. 지방에도 좋은 공대 많다. 거기에 국가적 지원이 집중되면 더욱 좋아질 게다. 서울에 있는 대학 가운데 수도권을 벗어나 멀리 지방으로 이전하겠다는 대학 있으면 그 대학에겐 더 많은 지원을 해주라.

내가 지방대학에 있다고 이런 말하는 걸로 생각하는가. 수도권 인구 집중 이대론 정말 안된다고 심각하게 걱정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 안 할 게다. 언론인들도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대학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가? 없다는 걸 잘 알지 않는가. 그 교통지옥의 현장에서 출퇴근하고 취재하러 다니기 지겹지도 않은가. 언론이여, 이 문제를 더이상 외면하지 말라.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