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들이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한 조선일보의 고소고발을 규탄하고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참여연대 등 100여 개 언론·여성·인권단체들은 20일 오전 11시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시민단체 인사 등에 대한 조선일보의 '고소 철회'를 요구하고 경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조선일보는 국회 대정부질의 과정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언급된 조선일보 임원을 실명으로 거론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을 비롯해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서프라이즈 신상철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지난 17일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들을 문제삼아 민언련 박석운 공동대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 김성균 대표, 진보신당 나영정 대외협력실 국장을 추가로 고소한 바 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20일 기자회견에 나선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이날 발표한 <'적반하장' '오만방자' 조선일보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조선일보에 △1·2차 고소를 즉각 철회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또 경찰과 검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국회 역시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법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도대체 누가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가"를 물으며 조선일보가 자사의 고소 내용을 알린 지난 17일자 1면 기사에서 박 공동대표 등이 '조선일보와 특정 임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한 데 대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못하면서 '명예훼손' 운운하는 자체가 한 편의 블랙코미디"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또 "'특정임원'의 일에 '조선일보사'가 고소의 주체가 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라며 "아무리 '족벌신문'이라지만 개인 차원의 문제를 전사(全社)적으로 발벗고 나서 수습하는 형태가 참으로 꼴볼견"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들은 "조선일보가 고소한 인물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조선일보의 교활함이 드러나기도 한다"면서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수십 개의 여성·인권단체가 한목소리로 '철저한 수사'를 외쳤지만, 이 가운데 민언련, 언소주, 진보신당만을 걸고넘어진 사실을 문제삼았다. 이렇게 세 단체를 고소하면서 '언소주는 지난해 촛불시위 당시 조선일보 광고 불매운동을 주도한 세력들이 만든 단체이고 민언련은 좌파 성향의 단체(17일자 1면 보도)'라고 왜곡해 색깔공세를 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지난 8일 조선일보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이었고, 그동안 어떤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인사들도 '장자연 리스트'에 언급된 인사들이 고 장자연씨에게 '부적절한 접대를 받았다'고 단정한 바 없다"며 "조선일보가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를 밀어붙인다면 시민사회단체 역시 조선일보의 '표현의 자유 침해 행위'에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나영정 진보신당 대외협력실 국장은 "지난주 이 자리에서 장자연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것을 갖고 조선일보가 1면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며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하는 언론사가 정말 언론사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나 국장은 "한편으로 고마운 마음도 든다"며 "수사는 미진한데 시간만 흐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더 열심히 싸우라는 메시지로 이번 고소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연예인이 성적 착취를 당하다 죽음에 이르렀다"며 "그 가해자들이 권력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수사 받지 않고 있는 현실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연우 민언련 공동대표(세명대 광고홍보학 교수)는 "사주의 이익을 옹호하는 조선일보는 조폭집단과 다를 바 없다"며 "조선일보는 지금이라도 진상을 밝히고 수사에 협조하라.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 이름으로 심판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에는 그밖에도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박석운 민언련 대표, 김성균 언소주 대표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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