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프랑스 파리가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구호로 삼았다면, 90년대 이 땅에는 세 젊은이가 “이제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고 노래했다. 문화분야에서 새로움은, 늘 보호받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치켜세우기에는 충분한 덕목이다.

최근 R.ef, 김건모, 신승훈 등 이른바 대중음악계의 ‘빅3’가 잇따라 앨범을 발표해 각종 매체에서 ‘대서특필’되고 있다. 가수들은 물론 매체들도 이들을 다룸으로써 ‘호황’을 누린다. 이것은 새로움에 대한 찬사인가 아니면 매너리즘의 산물인가?

우선 가장 먼저 앨범을 발표한 R.ef. 이성욱·성대현·박철우, 세사람으로 구성된 댄스그룹인 이들의 출발점은 무엇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울타리 쳐놓은 음악적 토양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빠른 템포의 리듬과 율동, 신세대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가사 등을 이들은 충분하게 공유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서태지와 아이들’과 짝패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1집의 폭발적인 성공에 힘입은 이번 2집은 서태지식의 음악적 도발을 결코 의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2집에서 눈길을 끄는 노래들인 <마음 속을 걸어가> <우정지사(友情之思)> <찬란한 사랑>은 사랑을 재료로 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다. 다만 <우정지사>만이 친구 사이의 우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을 보이지만, 그나마도 우정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음악적 형태 또한 마찬가지. 다양한 장르실험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2집의 음악적 형태는 1집의 연장·복제에 머물러 실험의식은 빈약하다는 평을 벗기가 어려울듯 싶다.

다음, 신승훈의 5집. 1집 1백40만장, 2집 1백58만장, 3집 1백70만장, 4집 1백60만장이라는 초유의 판매기록이 안겨준 것은 ‘발라드의 황제’라는 칭호. 이번 신승훈 5집은 그러한 성공의 연장선에서 사랑의 이모저모를 부담없는 멜로디를 통해 집중적으로 담고 있다.

<운명> <순간을 영원처럼> <내 방식대로의 사랑> 등 앨범 전반을 통해 ‘이별·슬픔·눈물·방황’ 따위의 표현을 직설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사랑, 그것도 어긋난 사랑에 대한 애절함을 강조한다. 타이틀곡인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뿐>에서는 죽은 자에 대한 사랑(네크로필리아)이 등장한다. 가령 “다음 세상 우리 만날때 서로 다른 모습이라도 난 너를 찾을 수 있어”라는 식이다.

신승훈의 음악을 지배하는 것은 이런 류의 ‘사랑 지상주의’. 문제는 이 사랑노래가 ‘거푸집 타령’과 닮은꼴이어서 사랑에 대한 인식 수준이 수사(修辭) 이상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가 내세운 사랑의 푯대에는 엇비슷한 내밀함만이 넘쳐나는 반면 사랑을 둘러싸고 있는 사랑보다 더 큰 커뮤니케이션이 없다.

R.ef와 신승훈이 이미 구축된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계속적인 흥행의 기반으로 삼았다면 4집을 발표한 김건모는 외형적으로 약간 다른 경우. 자신에게 성공을 안겨줬던 작곡가 김창환과 라인음향이라는 둥지를 떠나 ‘싱어송라이터’ 등으로의 홀로서기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앨범 타이틀도 로 붙였다. 그렇다면 정작 음악적 내용도 그런가?

김건모 4집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작과 다름없는 다양한 장르의 나열이다. 레게풍 힙합(<악몽>), 펑키 댄스(<세상풍경>), 재즈 블루스(), 발라드(<헤어지던 날> <흰눈이 오면>) 등이 뒤섞여 있다.

이같은 장르 퍼레이드는 김건모의 음악적 재기를 발산시키는 데는 일정 부분 가 닿지만 정작 전작들과의 차별성 획득이라는 점에서는 성과가 그다지 높지 못하다. 오히려 리듬의 탄력과 매력이라는 점에서는 훨씬 뒤처진다.

결국 이번 앨범은 김건모만의 새로운 특성을 끄집어내기 위해 택한 홀로서기 방법이 ‘새로움’에 무게중심이 있다기 보다는 전작의 상업적 성공을 복제하는데 겨누어져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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