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비판해온 문화에 대항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 때다.”
80년대말 이후 시사만화계에 한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박재동 화백(45)이 늦어도 6월중에는 또다른 ‘도전’을 위해 만평계를 떠난다.

독자들과 8년동안 하루하루의 아침을 같이 맞아온 박화백은 시사만화계를 떠나면서 “같은 호흡속에 살았던 독자들을 떠나 홀로 남아있는 모습이 아직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전한다. 독자들과 함께 하는 삶을 포기하는 것, 일종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을 수반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향해 가야한다는 절박함“이 시사만화계를 떠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박화백은 영상 애니메이션 작업에 나서게 된다. 그가 영상 애니메이션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문화 영역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어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세밀한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만화가로서 승부를 걸고 싶은 욕심도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현재 박화백은 강요배 화백과 함께 제주 4·3민중항쟁을 주제로 작품을 진행중이다. 서울무비와 코코앤터프라이즈가 함께 4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전체 예상 제작비는 20억원 규모. 박화백은 지금 준비중인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대강의 캐릭터가 잡히는 3∼4개월 후 프레젠테이션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만큼 제3의 스폰서도 물색중이다.

이 작품은 만화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직접 연기를 시켜 그림을 구성할 계획이다. 강요배 화백이 지휘하는 배경팀이 전체 화면 구성을 맡고 박화백이 연출과 주요 캐릭터 및 시나리오작업을 하게 된다. 작품은 제주 4·3 민중항쟁 50주년이 되는 98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평계를 떠나면서 박화백은 우리 시사만화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대가 불가능하고 연·월차 휴가도 쉽지 않으며 해외연수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시사만화가는 5년 정도가 지나면 기진맥진해 탈진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박화백의 후임으로는 박시백 화백(33)이 결정됐다. 박시백 화백은 고대 경제과 출신의 만평계에서는 신인으로 특히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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