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에 비친 최근 정국은 난장판이다. 얽힌 실타래마냥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길 없는 이전투구가 계속되는 모양새다. 누구 하나 깨끗할 것 없는, 진흙탕의 전사들이다.

경향신문(‘장도리’, 7일)은 의원 빼가기를 둘러싸고 연일 씨름판을 벌이는 정치판을 두고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정치개혁은 요원하다고.

한국일보(만평, 7일)는 여야의 공방을 벼랑끝 싸움으로 묘사하며 하나를 덧붙인다. 연신 휘슬을 불어대는 심판이 그것이다. 한국일보의 묘사대로라면 여야공방은 룰을 어긴 불공정 게임이 된다.

이들 시사만화가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는 이유는 다른 시사만화를 통해 확인된다. 동아일보(만평, 7일)는 15대 원 구성도 못하는 정치판을 나사 빠진 국회의사당에 빗대 ‘점잖게’ 비판하고 있다.

조선일보(‘야로씨’, 7일)는 좀 더 직설적이다. ‘칩거’ 중인 JP를 향해 묻는다. ‘왜 국회 안나가요.” 물음의 주체는 꼬마다. 세파에 때묻지 않은 꼬마는 뭘 상징하는가. 순수, 원칙, 정도 등등이 될 것이다. 순수의 상징이 던지는 직설적인 물음, 그 행간엔 원 구성을 거부하는 야권에 대한 강한 비난이 깔려있다.

비록 초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시사만화는 하나의 공통분모 위에 서 있다. 현상 집착증이 그것이다. 왜 원 구성 거부라는 파행이 연출되고 있는지,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없다. 이들 시사만화가 관심을 두는 건 현상적으로 드러난 결과 뿐이다. 드러난 결과만을 가지고 교과서적인 잣대로 비판할 뿐이다.

도발과 응전은, ‘싸움’을 빚는 두 요소이지만 그 질은 전혀 다르다. 도발이 부당한 것이라면 응전은 정당성을 얻는다. 비록 부당한 도발에 맞선 응전이라 해도 정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이들 시사만화가 야권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이유도 아마 이런 논리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를 앞세우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다. 도발에 대한 수차례의 경고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도발의 강도가 전혀 누그러들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그 도발을 잠재울만한 무기가 야권에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야권의 원 구성 거부 방침은 힘없는 야권이 택할 수 있는 배수진의 카드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정도를 요구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항복’을 촉구하는 것과 진
배없다.

시사만화의 잘못된 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피해자인 야권이 가해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범법자’로 전락해버린 사실은 물론, 국민의 주권 행위가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를 통해 유린되고 있는 사실이 희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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