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의 교묘한 방송통제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총선보도에서 정권의 의중에 충직하게 협조한 방송은 이번에는 내년 말 대선을 겨냥한 여권의 대야 강공 드라이브에 기꺼이 협조하고 있다. 보도의 가치나 기사의 비중을 고려하지 않는 산술적인 의미의 공정, 균형보도론으로 포장된 정권 이미지 홍보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두 김총재 회담과 지난 7일 신한국당 전국위원회 개최에 대한 방송 보도는 이 같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김총재는 4일 회동에서 여당의 부정선거와 인위적 과반수 의석 확보 공작을 규탄하면서 등원거부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두 김총재는 또 ‘내각책임제로 말하면 정권이 교체됐을 일인데 이를 권력과 금력으로 뒤집겠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라는 표현으로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신한국당의 손학규 대변인은 당초 두 김총재의 회담 결과에 대해 ‘등원 거부 운운은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내놓았었다.

그러다가 저녁때 갑자기 카메라 기자들을 다시 불러 ‘두 김총재가 내각제 개헌을 위해 정치적 파국 분위기 조성’을 획책하려 한다며 두 김총재의 내각제 운운 부분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논평을 다시 내놨다. 논평 번복의 과정에는 첫번째 논평이 미온적이라는 상부(?)의 호된 질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정당 내부의 의사번복 과정 문제가 아니라 이같은 과정이 방송보도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방송보도는 MBC가 뉴스데스크의 첫번째와 두번째 꼭지에서 ‘등원거부 불사’ ‘밀약의혹제기’의 제목으로 두 김총재 회담과 신한국당 반응 소식을 전달했고 KBS도 9시 뉴스에서 ‘원 구성 거부 검토’ ‘여, 개헌 음모설 제기’의 제목으로 첫번째와 두번째 꼭지를 내보내 편집 순서와 내용, 전달 형태에 있어서 약속이나 한 듯이 양사가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MBC의 경우 오후 편집회의까지는 신한국당 반응이 앵커멘트로 잡혀 있다가 신한국당의 논평내용이 바뀌자 편집회의도 거치지 않고 새로 나온 논평 내용만으로 리포트 처리했다. 당시 국회출입 기자들은 신한국당의 반응은 앵커멘트 처리하고, 아이템을 추가한다면 향후 정국전망등 분석기사를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MBC의 편집내용 번복 과정에도 신한국당의 논평 번복과정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협조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일 신한국당의 전국위원회 소식도 MBC, KBS 양사가 똑같은 내용의 아이템을 똑같은 순서로 내보냈다. 양사 공히 첫번째와 세번째로 이홍구 체제 출범과 해설기사를 리포트로 처리했고 두번째 꼭지에는 ‘큰 정치’라는 제목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치사를 전달했다.

대통령의 치사는 한 당의 총재 자격으로 밝힌 것에 지나지 않고 작년 8월 민자당 전국위원회 때의 것과 대동소이한 것이어서 앞부분 리포트에 싱크(육성이 곁들여진 화면)로 처리하면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쟁적으로 별도로 리포트 꼭지를 잡아 김영삼 대통령의 육성을 국민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특히 KBS의 경우 한 개 리포트에 육성이 곁들여진 김대통령 등장화면을 무려 6번이나 집어넣는 놀라운(?)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MBC도 YS 싱크 수는 한 개로 줄이는 대신 야권의 반응을 앵커멘트로 간단히 처리해 나름대로 정권에 대한 성의(?)를 표시했다. 여당의 대표선출 뿐만 아니라 다음날 후속 당직개편 소식마저도 방송사 메인뉴스의 톱으로 장식되는, 장식돼야만 하는 오늘의 방송 현실은 ‘누가 과연 방송의 주인인가’하는 질문을 새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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