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면 누구가 계엄당국의 보도 통제에 대해 불만스러워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 그래서 그 사실을 어떻게든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찍어 모아둔 것 뿐이었지 뭐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지난 79년 10월 30일부터 80년 5월24일까지 편집국 칠판에 게시된 당시 계엄당국의 언론사 보도통제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해 오던 것을 지난 14일 MBC 시사프로그램 을 통해 최초로 공개한 김성수씨(65· 전 한국일보 사진부 차장)는 인터뷰 도중 “별일 아니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번 사진 공개는 “언젠가 공개한다고 마음 먹고 있었지만 이렇게 공개될 줄은 몰랐다”는 그의 말처럼 스스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PD수첩 취재팀이 수소문 끝에 김선생을 방문해 사진 공개를 요구해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사진 작업을 했을 것”이라며 오히려 쑥스러워 했다. 자신이 정년퇴임하고 사진을 기록한지 16년만에 공개된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운 듯했다.

그러나 70년대말에서 8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사회의 짙은 암흑기에 신군부가 날마다 자행한 역사 은폐 행태를 94장의 사진에 담아 놓는다는 게 당시로서는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80년 2월 편집국에서 주간부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계속 사진작업을 했다.

“편집국은 3층이고 주간부는 6층이었으니 매일 내려가 사진을 찍는게 수월치만은 않더군요. 더구나 누군가 나의 행동을 수상히 여겨 군당국에 밀고라도 하면 그땐 끝장이지. 그런데 누구도 내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어요. 내색은 안했지만 군부의 보도통제에 하나같이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 그는 “나를 이해해 준 당시 동료들에게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 해직문제로 화제가 이어지자 김선생은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강제로 회사를 떠난 분들이야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하지만 남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편했던 것은 아니지요.”

김선생은 오해 없이 들어달라며 “강제 해직자와 남은 사람들의 고통은 아마 종이 한장 차이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 가까이 지내던 동료와 선배를 떠나보낸 괴로움과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끊은 지 5년된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그는 보도지침 이외에도 80년 당시 검열 당한 기사 10건과 학생 시위나 광주항쟁 상황을 담은 사진들을 보관하고 있다. 또한 80년 이후 해마다 되풀이됐던 5·18관련 학생 시위 사진과 유인물 등도 소장하고 있다.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김선생은 머지않은 장래에 “사진 전부를 한국일보 자료실에 돌려줄 생각”이라고 했다. “나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당시 사진작업을 인정하고 지지해준 모든 동료들의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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