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위원장 이형모)과 일본신문노동조합연합(위원장 키타무라 하지메)은 지난 5월 21일 일본 도쿄 선샤인 시티빌딩에서 언론의 상업화와 언론인의 역할이란 주제로 제2차 한일언론인 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쪽에서 한겨레신문 손석춘기자(여론매체부)가 상업주의와 한일언론인의 과제를, 일본쪽에서 리츠메이칸대학 카쓰라 게이치교수가 매체상업화와 언론인의 책임을 각각 주제 발표했다. 주제발표 내용과 토론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상업주의와 한일 언론인의 과제 (손석춘·한겨레신문 여론매체부 기자)
언론, 한일 민중의 가교로 거듭나야


지난해 제1차한일언론인 심포지엄에서 양국의 언론인들은 내셔널리즘을 넘어 한일간의 민중연대가 필요하고 언론인이 이를 위해 노력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유감스럽게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올해 들어 독도문제 올림픽 축구 최종 예선전 결승경기에 대한 보도가 그렇다.

서로에 대한 이성적 보도와 양국간의 올바른 민중연대를 가로막는 주요인은 무엇인가. 바로 언론의 상업주의다. 언론은 민족의 내일을 생각하는 정론지인 양 행세하며 맹목적 애국심을 조장, 상업주의적 목표에 이용하고 있다. 언론은 대중을 맹목적 애국심에 가두어두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민족을 망치는 일이다. 이같은 사실은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했던 독일과 일본의 과거 언론들이 민족에 저지른 죄과를 상기하면 충분히 알 수 있다.언론의 상업주의는 또 인간성의 상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언론이 판매부수와 광고수입을 늘리기 위해 선정주의적 보도를 확대함으로써 인간을 단순화, 즉자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언론인이 뉴스를 팔아먹는 장사꾼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높다.

그렇다면 언론의 상업주의를 어떻게 근절시켜야 하는가. 먼저 상업주의 언론이 뿌리내리고 있는 토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후 일본의 정치경제 체제가 제국주의 세력들을 그대로 물려받았듯이 한국의 경우도 친일파 세력들이 그대로 살아남았다. 이들 가운데 언론자본이 형성됐으며 바로 이 자본이야말로 상업주의의 뿌리다. 이 언론자본의 상업성을 막아낼 일차적 주체는 언론인들 자신, 무엇보다 언론노동운동이다.

이와 관련, 한국의 언론노동운동의 활동방향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언론자본으로부터 편집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최근 무한경쟁 국면에 접어들면서 언론노조 자체가 자사 이기주의에 몰입하는 등 언론자본에 대한 효과적 견제를 하고 있지 못하다. 둘째, 바로 이런 이유로 언론노련은 산별노조의 전망을 갖고 조직강화에 나서고 있다.

방송쪽은 방송단일노조건설준비위를 조직해내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반면 신문은 아직 산별노조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지 않다. 셋째, 시민 사회단체와의 연대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언론노련은 대중적 언론비평지 미디어 오늘을 창간하기도 했다.

이같은 한국의 경험이 일본의 경험과 공유된다면 상업주의 언론에 맞선 양국 언론운동이 보다 효과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언론이 잘못된 환경을 단숨에 개혁하기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론과 사회의 민주화가 언론노동운동이 담당해야 할 몫이란 점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한일관계의 화두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도 자명하다.

양국의 민중들만이 서로 가슴을 열어놓을 수 있으며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양국의 언론인들이 나서야 한다. 양국의 양심적 지성과 풋풋한 민중들의 가교로 양국의 언론이 거듭나는 과제, 그것은 상업주의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된 언론노동자들의 몫이다.

매체 상업화와 언론인의 책임 (카쓰라게이치·리쯔메이칸대 교수)
대자본에 의한 정보우산 현상 막아야


TBS가 취재원 보호의 원칙을 무시하고 한 변호사가 옴진리교를 비판한 인터뷰 내용을 옴진리교 측에 공개, 결과적으로 변호사와 그 가족이 옴진리교측에 의해 피살당한 사건은 일본 언론의 상업주의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시청률을 의식해 하나의 쇼를 만들자는 생각이 빚은 결과다.

그러나 과연 누가 TBS에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심지어 후지TV는 재미있지 않으면 TV가 아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있다. TBS문제는 상업주의의 과다한 경쟁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이런 가운데 신문사업은 판매, 광고 등의 한계에 직면해 있고 이런 한계를 방송이나 뉴미디어 쪽에 진출함으로써 해결하려 하고 있다. 신문은 현행 법률이 방송겸영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실제로 요미우리가 NTV YTV 삿포로TV 등을, 아사히가 전국아사히 ABC KBC 등의 방송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 신문은 DB 케이블TV 위성방송 비디오텍스 등의 멀티미디어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멀티미디어의 앞날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문들은 그 사업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종의 아나키한 상태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언론내부의 상업주의가 아니다. 언론의 외부인 대자본이 멀티미디어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도시바, 소니, 히타치 등이 일본의 주요한 멀티미디어 사업을 점유하고 있다.

또 미국의 타임워너, 월트디즈니, 콜럼비아영화사 등 거대 미디어 재벌과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자본의 진출도 심각한 상태다. 과거엔 핵우산이란 표현을 썼지만 이젠 정보우산이란 말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 제패될 멀티미디어 사회가 좋은 것일 순 없다. 오히려 폐해가 예상되고 특히 미국의 문화침투는 상당한 마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보보다 상업적 목적에 맞는 정보를 정보구매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소유층과 소외층 사이에 야기될 삶의 질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면 저널리스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저널리즘성(性)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정보의 독점화가 예상되는 사회에서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언론인은 멀티미디어 정보공간에서 공공을 위한 정보공간을 확립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작업은 언론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사회의 네트워크 및 커뮤니케이션과의 연대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또 미국의 정보우산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양국의 언론들이 아시아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토의해야 한다. 이런 모든 작업들은 상업화의 물결속에서 언론인이 독립적 존재로 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