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 이광표 문공부장관이 언론인 해직자 명단을 통보한 행위는 법률적 행위가 아니므로, 공보처는 해직언론인들이 청구한 행정심판이 각하되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공보처장관 취임 뒤 80년 해직언론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처리하려 했으나 언론계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가 선언적으로 당시 해직이 잘못됐음을 밝힐 수 있지만 정부 차원의 보상은 해직 경위를 밝힐 근거자료가 없어 불가능하다.”

위에 적은 것은 오인환 공보처장관이 80년 해직언론인 문제에 대해 보인 두 가지 태도의 요약이다. 맨 위는 해직언론인들이 80년 해직은 이광표 당시 문공부장관이 내란세력의 일부가 되어 행한 불법적 공권력 행사의 결과라며 이를 바로잡을 행정적 조처를 촉구한데 대해 공보처가 지난 3월 장관 명의로 작성해 행정심판위원회로 보낸 답변서의 큰 뼈대다.

그 아래는 오장관이 최근 뉴욕에서 한국특파원들에게 해직언론인에 대해 밝힌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오장관이 언론인 해직에 대해 밝힌 상이한 태도는 그 장소나 대상이 달랐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공인의 입장이 큰 차이를 나타낸 것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오장관은 행정심판위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공보처의 전신인 문화공보부 이광표장관이 80년 언론인 해직과 언론사 통폐합 과정에서 신군부의 내란행위에 동조한 것은 법률적 의미까지 지닌 것은 아니고 단순한 하수인의 역할에 불과했다는 요지의 논리를 전개했다. 언론인 해직은 해당언론사와 해직언론인과의 사법적 법률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공보처의 답변은 검찰이 전두환, 노태우씨의 재판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거듭 확인한 이광표장관의 내란동조 역할을 정면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장관이 뉴욕특파원들에게 밝힌 것은 2년여 전 현 정부가 해직언론인 문제를 법률적으로 검토하고 전향적으로 처리하려다가 언론계의 저항에 부딪혀 중단한 사실이다. 더구나 정부가 배상하는 문제까지 점검했다던 80년 당시 이광표 장관의 행위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결과일 터인데 왜 행정심판위원회에는 판이한 답변을 보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만약 공보처가 오장관의 취임 직후 내린 결론을 소신있게 집행했거나 최근 해직언론인들이 행정심판을 청구했을 때 그런 사실을 행정심판위에 통보했더라면 정부 부처간에 불필요한 낭비적 요인을 생략할 수 있었을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행정심판위가 지난 4월19일로 예정돼있던 심리를 연기한데 이어 5월10일로 잡은 심리일을 다시 연기한 것은 공보처의 이중적인 논리와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공보처가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대세를 의식했거나, 다시는 행정부처장이 내란세력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할 전례를 세우는 자세로 임했더라면 아마도 행정심판위가 두 차례에 걸쳐 심리를 연기하는 전례가 없는 일을 하지 않고 신속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행정력을 강화할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를 추진한다면 원칙에 따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굽은 것을 펴는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망설이다가 원칙을 져버리는 것은 결국 정부의 비생산성과 국민의 불신을 사는 원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공인은 언행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동일한 사안을 놓고 장소에 따라 또는 상대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불필요한 혼란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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