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는 걸까, 못 쓰는 걸까.
탤런트 고 장자연씨가 숨지기 전 작성한 ‘문건’에 등장하는 신문사와 그 대표의 성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공개됐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실명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해당 신문사가 보도참고자료까지 냈음에도 많은 언론사들은 익명 보도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대정부질문에서 신문사 이름과 대표의 성을 공개한 뒤 인터넷에는 해당 동영상이 급속히 유포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관련 기사를 익명으로 보도한 기사에 “뭐가 무서워서 실명을 못 쓰느냐”며 실망했다는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언론사들은 국회의원의 발언이라도 사실이 아닐 경우 인용보도한 언론사에 명예훼손의 책임이 있고, 경찰이 관련 혐의를 밝혀내기 어려운 수사이기 때문에 실명 공개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명길 MBC 정치2부장은 “변호사 자문을 구해보니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의 발언이라 해도 이를 인용 보도한 기관은 면책특권을 가질 수 없고, 보도한 내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해서 실명을 쓰지 않기로 했다”며 “세상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아는데 왜 언론사는 이름을 못 쓰냐는 답답함도 있겠지만 일단 명예훼손의 우려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 부장은 어느 시점에 공개할 수 있느냐에 대해 “본인이 조사받은 사실을 인정하든지 조사발표를 한 시점이지 않겠느냐”라면서도 “하지만 출국금지된 인터넷언론사 대표까지 안 쓰는 건 드문 예인 것 같긴 하다”고 덧붙였다.

김정훈 KBS 정치팀장도 “자문 변호사에 문의해보니 면책특권이 있는 의원이 있는 발언이라도 이를 인용보도한 뒤 사실과 다르게 나타났을 경우 명예훼손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며 “조사결과 가담이 돼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상운 변호사는 “공인이 행한 공적인 관심사에 대해 언론이 실명 보도를 하는 것은 현재의 대법원 판례에 의해 불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안 변호사는 “장씨 사건의 본질은 공인인 신문사 대표가 성접대를 받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이것이 성매매나 강요죄에 해당된다면 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공적 관심사에 해당된다”며 “이런 사안에 대해 국회의원이 대정부 질문에서 한 말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인용보도된 사람이 손해를 입을 수 있지만 그것은 헌법에서 면책특권 제도를 준 것에 따른 불가피한 피해라고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해당 신문사가 이 의원의 실명 공개와 관련해 내놓은 보도참고자료 내용을 두고 이중잣대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신문은 “면책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라 하더라도 대정부 질문에서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을 ‘아니면 말고’식으로 물어, 특정인의 명예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것은 면책특권의 남용에 해당된다”며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실명을 적시, 혹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므로, 관련 법규에 따라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밝혔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7일 ‘’지난해 10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검찰청 국정감사 도중 ‘DJ비자금’을 폭로했을 때 DJ측이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는데도 해당신문은 주성영 의원의 폭로내용을 상세히 전하면서 DJ측의 반박은 기사 말미에 곁들였을 뿐”이라며 “원리 따로 응용 따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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