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조제권을 둘러싼 한의사와 약사들간의 싸움이 끝간 데 없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해당사자들의 태도가 워낙 강경해서 정부나 언론에서도 원론적인 타협안을 제시하거나 집단이기주의를 비판할 뿐이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령, <동아일보>(5월17일 일자) 사설은 “일방적 결의와 극한 행동을 앞세운 양측의 대결은 국민의 눈에 의약발전과는 상관없는 한낱 직역(職域)싸움이나 기득권싸움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양비론을 펼치고 있고, <한겨레신문>(5월19일 일자)도 “복지부가 보건정책에 대해 어떤 원칙과 철학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면서 한약조제 약사시험의 강행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말인즉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쓰레기 소각장 문제,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문제, 고속전철 경주시내 통과문제, 각종 개발 또는 개발제한 문제에서 보듯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양보·타협이 있기 어려웠다. 다만 적나라한 물리적 대결이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됐을 뿐이다.

나는 한 3년쯤 전에 대구의 <매일신문>(93년6월29일 일자)에다 한약분쟁에 관련된 칼럼을 썼다가 혼이
난 일이 있다. 나는 지금 다시 그 분쟁에 말려들 의사가 조금도 없지만, 당시의 내 견해를 반성하는 뜻에서 칼럼의 일부를 여기 옮겨보겠다.

“약사들은 한약조제권을 주장하고 한의사들은 이것이 자기 고유영역의 침탈이라고 주장하며 맞선 가운데 주무부서인 보사부(지금의 복지부)는 판단불능상태에 빠진 것 같다. 내 생각에 이것은 전혀 체계를 달리하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하나의 법령으로 처리한 데서 오는 불가피한 마찰이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한의학은 인간의 생리와 병리를 종합적으로 관찰하며 인체기능의 조화를 회복하는 데서 병의 뿌리를 없애려고 한다.

따라서 일상생활과 치료행위는 단절되어 있다기보다 통합되어 있다. 반면에 현대 서양의학은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기능과 값비싼 기구들이 동원되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한의학에서는 의약이 분리되기 어렵지만 서양의학에서는 당연히 분리된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서양음악의 음계와 국악의 음계가 다른 것만큼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물론 한 문외한의 잘못된 견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견해를 바탕으로 적어도 다음의 세가지 주장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간의 병과 건강에 대한 동서양의 접근법이 어느 점에서 공통되고 어디가 다른지 이론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둘째, 양의든 한의든 의료행위가 단순한 돈벌이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한약조제가 폭리의 소지를 안고 있는 한, 그 이익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세째, 이해관계의 상충에 따른 계층·집단·지역간의 마찰을 이해당사자들만의 직접적인 실력대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사회적 관점에서 공론화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한약분쟁이 지금처럼 목소리 큰 쪽에 유리한 거리의 싸움으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정글의 법칙’의 지배 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부와 언론의 존재의의가 어디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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