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월이다. 이땅의 5월은 저 광주의 1980년 이래, 해마다 다른 얼굴로 찾아든다. 그 5월의 변화가 마치 역사의 변화인 것처럼….

돌이켜보면 함성의 5월은, 이내 짓밟혀 죽음과 침묵의 5월로 강요되고 만다. 한동안 5월의 진실은 금기의 언어였으며, 겨우 ‘은어’의 수준에서 시민권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숨통을 터주었던 것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designtimesp=17523>라는 한권의 기록이었다. ‘판매금지’의 딱지가 붙은 ‘지하출판물’이었다.

그러나 민주·민족·민중운동의 원점이 되었던 5월이 그대로 묻혀갈 턱은 없었다. 우여곡절을 다 잘라버리고 말한다면, 그 반증의 하나가 <모래시계 designtimesp=17526>라는 드라마였다. “돌아오지 않는 전사들은 흰 학으로 변한다는 것을”이라고 흐느끼는 ‘백학’의 노래를 깔면서 방송되었던 그 드라마는 그나마 5월의 진실이 햇볕 아래 시민권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나마’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 모두가 5월의 진실을 두루 그려냈다고 보기는 어려운 탓이며, 더러는 지나친 비분과 감상의 습기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그 ‘그나마’들의 쌓임은 소중하다. 그 쌓임 끝에 5월의 내란과 학살을 단죄하는 특별법은 마련되고, 범죄의 무리는 사법의 심판을 기다려야 하게 되지 않았던가.

나는 오늘, 그 정사(正史)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5월의 언론사, 5월의 문화사를 말하고자 한다. 전국의 유수한 개봉관에서는 5월의 진실을 그려낸 <꽃잎 designtimesp=17531>이 상영되고, 수십만을 헤아리는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꽃잎 designtimesp=17534>을 보고 난 나의 감상은 여전히 ‘그나마’의 감탄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5월의 그날을 재현하기 위해 광주의 금남로에 다시 모였던 시민들, 그리고 <꽃잎 designtimesp=17535>을 이루어내고자 정력을 쏟았던 모든 분들에겐 참으로 민망하지만 아직도 5월의 총체는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5월에 총체를 되살려내고자하는 이들은, 새로운 기록영화를 만들어내는 운동에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나는 명색이 언론에 종사한다는 한 사람으로서 지나간 16년 동안 무엇을 했던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한 스스로를 질타하게 된다. 소설가들과 드라마작가 그리고 영화감독들이 그나마 5월의 진실에 접근하고 있을 때, 막상 언론에 종사한다는 나는 무엇을 했던가. 그저 단편의 단편, 단편의 조각들을 말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 듯이 행세해온 나는 진정 언론의 종사자임을 자부할 수 있는가. 그들의 접근에 ‘그나마’의 핀잔을 퍼부을수 있는가. 남의 나라 저널리스트들이, <대통령의 음모 designtimesp=17538>를 그려내고 <다나카 총리의 금맥 designtimesp=17539>을 펴내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그려내고 있었던가.

영화 <꽃잎 designtimesp=17542>을 ‘그나마’라고 말하면서도, 우리의 언론은 그 <꽃잎 designtimesp=17543>에 버금 갈만한 5월의 꽃잎 하나도 피워내지 못했음을 더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의 ‘그나마’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힘’을 잃은 나는, 어쩔수 없이 이땅의 젊은 동지들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우리의 언론에도 5월의 <꽃잎 designtimesp=17544>을 피워내주기를. 그리고 꽃잎을 넘는 5월의 나무, 5월의 산하를 그려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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