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영화에 나타난 과학자, 또는 과학기술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영화속에 나타난 과학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과학기술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재앙’으로 묘사된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도덕적·정치적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미친 과학자’로 그려지기도 한다.

최근 서강대 제2대학 과학기술강좌에서 발표된 ‘대중영화속의 과학기술’이란 논문은 영화속에 반영된 과학기술의 이미지는 실제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인식을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 논문은 영화속에 나타난 과학기술의 이미지를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궁극에 있어 정치적·환경적으로 재앙을 가져오거나 반민주적인 가치들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는 사고이다.

사회의 관료적 지배와 정치적 억압은 더욱 강화돼 극단적인 관료주의와 관리사회가 나타난다(1984년, 트론, 브라질). 대기오염으로 인한 스모그 때문에 햇빛이 지구상에 도달하지 못해 언제나 어두운 산성비가 계속해서 내리기도 하고(블레이드 러너), 오존층의 파괴로 지구에 거대한 지붕이 덮이기도 한다(토탈리콜). 환경오염으로 인해 임신능력을 지닌 여성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가임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전체주의적인 국가체제의 통제에 놓인다(핸드메이즈 테일).

둘째, 과학자와 엔지니어는 ‘미친 사람’이거나 자율성을 상실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SF영화 속에 나타난 과학자는 대체로 냉혹하고 무자비하며(하얀 가운이 상징이다), 정치권력이나 대기업의 이해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한다.

비행을 저지른 사람을 사회에 순응적인 인간으로 ‘개조시켜’ 버리고(시계태엽속의 오렌지),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의 대립속에서 자본가쪽을 편들며 노동자계급의 지도자를 닮은 로봇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현혹시키고, 결국 말썽많은 노동자들을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짠다(메트로폴리스).

또 많은 영화에서 과학자는 ‘배신하는’ 역할을 맡거나(에일리언 2), 궁극적인 악역으로 등장한다(DR. NO).
셋째 유형은 과학기술의 성과를 긍정하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내는 영화도 많다. 예상치 못한 우주선의 폭발(아폴로 13호), 물체전송기를 발명한 과학자가 스스로를 전송시키다가 ‘우연히’ 끼어든 파리때문에 파리와 합성돼 버리는(플라이)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논문은 대중영화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영화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생겨난 측면도 있지만 대중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세기말∼20세기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에 예속되는 상황이 빚어진데 대한 대중들의 불안과 소외감이 영화의 시각속에 이런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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