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쪽이 지난 4월의 비무장지대 사태는 한국 정부와 언론에 의해 과장됐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김정우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 언론의 왜곡 보도를 비난하면서 일정이 잡혀있던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마저 취소했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통일 부총리와 공보처 장관마저 언론의 북한 문제 보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권오기 부총리는 “언론의 구조적 경쟁으로 인해 대북관련 기사에 오보가 양산되고 있다”며 “정치가 3류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다면 언론은 4류”라며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난했다. 오인환 공보처 장관도 언론의 북한 문제에 관한 오보를 지적하며 언론이 신중하고 사려깊게 보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소설쓰는 기자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언론의 북한 문제 보도에 관한한 우군이 없다. 미국과 북한은 물론 한국 정부까지 언론을 두들겨 팬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한국 언론의 북한 문제 보도는 ‘저널리즘’의 영역이 아니라 ‘문학’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가 소설로 전락한 책임을 언론에게만 묻는 것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역대 정권들은 언론이 북한에 대해 소설을 쓰지 않으면 안되게끔 실질적으로 강요해왔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정부는 북한에 관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면서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제공해주는 북한 관련 정보론 갈증을 채울 수 없는 언론이 택한 길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북한 문제 보도는 ‘저널리즘’에서 ‘문학’의 영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언론이 발휘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유로운 것이라면 적어도 ‘균형’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한대로 팽창하는 고무줄 속성을 갖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찌 균형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무조건 북한을 두들겨패거나 북한을 가능한한 악의적으로 묘사하는 상상력과 창의력만이 가능했다. 그리하여 언론이 쓰는 북한 관련 소설은 ‘반공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언론에겐 나름대로의 잇속도 있었다. 뉴스 가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가 ‘공포감’이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되게 부풀리면서 국가안보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떠들어대면 신문이 잘 팔린다. 애국심을 과시할 수도 있다. 이의 제기를 하는 사람을 빨갱이나 좌경 분자로 몰 수도 있다. 이러한 ‘일거삼득’의 효과를 가리켜 ‘국가안보 상업주의’라고 한다.

정부는 언론의 ‘국가안보 상업주의’ 때문에 대북 외교가 잘 안된다고 불평을 늘어 놓는다. 그러나 정부는 그런 불평을 하기 전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중성부터 스스로 고쳐야 한다. 선거에서 재미를 볼 수 있을 경우엔 언론의 ‘국가안보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건 모순이다.

정보독점과 상업주의

어찌됐건 언론의 ‘국가안보 상업주의’는 국가안보에 암적인 요소임을 우리 모두 직시해야겠다. 언론이 진정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문제삼아야 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서울의 인구 집중과 그에 따른 무질서와 혼란이야말로 국가안보에 가장 큰 약점이다.

직업 군인들에 대한 처우는 어떠한가? 매카시즘은 반공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반공을 해친다는게 입증됐으며, 이는 미국 FBI가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엔 매카시즘이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언론은 그런 문제들을 기사로 다뤄본 적이 있는가? 북한을 악마로 묘사하는 소설만 쓴다고 반공이 되는 줄 아는가? 북한과 미국을 ‘북미’라고 부르는 대신 ‘미북’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는 따위의 주장을 한다고 해서 반공이 되는 줄 아는가?

문화체육부 장관은 무얼 하는가? 언론에게 ‘반공 문학상’을 수여하라. 통일부총리는 무얼하나? 북한에 대해 소설을 쓰는 언론이 4류라면 북한 문제를 정략적으로 다루는 지도자는 5류라는 직언을 대통령에게도 과감하게 하라. 공보처 장관은 무얼 하나? 언론에 대해 불평하기 이전에 언론의 북한 보도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그 어떤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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