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모사라 해야 할까. 중앙일보의 최근 시사만화엔 중심이 없다.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혼란스런 내용들이 종종 눈에 띈다. 같은 소재를 두고 정반대의 시각을 펼친 시사만화가 눈에 들어온다.
모순이 뭔지를 몸소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사만화는 월드컵 유치를 소재로 한 것들이다.

중앙일보는 5월 25일자 왈순 아지매에서 과열로 치달은 월드컵 유치 작전에 대해 이렇게 힐난하고 있다. 욱하는 국민성인데 펌프질 너무 했어. 말인즉슨 옳다. 월드컵 유치에 실패하면 마치 나라가 결딴이라도 날듯 야단법석을 피어 온 행태를 감안하면 유효적절한 일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동의는 25일자 만화에만 국한된다. 욱하는 국민성에 마구 펌프질을 해댄 당사자가 바로 언론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어느 시사만화보다도 중앙의 왈순 아지매가 가장 열성적으로 월드컵 유치에 관심을 보여온 사실을 상기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왈순 아지매의 펌프질에 관한 예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불과 이틀 전의 신문만 펼쳐 봐도 그 펌프질이 얼마나 직설적으로, 강도 높게 이루어졌는 지를 알 수 있다. 왈순 아지매는 23일, 유치 실패하면 할복 인사 나올지도 모른다는 독일 신문의 보도를 빗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할복까진 안 가도 최소한 삭발은 해야. 경고라기 보다는 차라리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에 왈순 아지매는 무엇을 담고자 했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월드컵은 유치하고 봐야 된다는 뜻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있을까. 그런데도 이제 와서 왈순 아지매는 펌프질을 너무 했다고 힐난하고 있다. 누구를 향한 힐난인가.

모순 시리즈의 제2탄은 미그 19기 귀순과 관련한 만화에서 찾을 수 있다. 중앙일보는 25일자 만평에서 미그 19기 귀순을, 행여 4자 회담 성사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었다. 하지만 27일자 왈순 아지매에서 이런 우려는 자축의 환희로 표변한다. 발렌타인 17을 들이키며 미그기의 귀순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고 있는 것이다.

이틀 사이에 변한 것이라곤 없다. 오히려 만평을 통해 내보였던 우려를 더욱 깊게 하는 징후만 나타났을 뿐이다. 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4자회담에 관한 한·미 공동 설명회를 거부함으로써 4자회담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했을 뿐이다.

더욱이 이철수 대위의 귀순 동기에서는 남한의 우월성이나 북한의 피폐함을 보여주는, 정부와 언론이 선호하는 어떠한 정치적 상징 기호도 찾을 수 없다. 지도원의 눈 밖에 나 승진의 길이 막혀버린 데 대한 좌절감 때문에 피붙이마저 내팽개치고 제 한 몸의 안위만을 좇은 비정한 남편, 아버지의 모습이 씁쓸하게 아로 새겨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중앙일보는 정당한 우려를 거두고 북의 불행은 남의 행복이라는 냉전 시대의 케케묵은 시각으로 회귀해 버린 것이다. 손바닥 뒤집듯 일순간 논조를 틀어버리는 중앙일보의 시사만화를 보면서 독자들이 신뢰감을 갖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만이 아니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일관되고 명쾌한 논평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식언(食言)시리즈는 새털 마냥 가벼운 공언(空言)으로 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때문에 결국 제 살 깎기의 우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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