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프트럭 때문에 화차가 못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폐기물까지 모두 내보내라는 지시가 있어 어쩔 수 없어요.”

완성된 철제를 실은 화차들이 계량대로 갈 수 있게 교통정리하는 조차역인 인천제철의 허충열씨(56)에게는 하루 5백대를 통과시키는 일이 늘상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오늘은 폐기물을 실은 덤프트럭까지 폭주해 두려움을 느낀 그는 계량실에 조정을 요청했다.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는 거대한 덤프트럭의 운전자들에게 그의 왜소한 모습이 보일지 불안했던 것이다.

“차들이 말을 안들어요. 위험합니다.” “어떻게 끝내봅시다.”

그는 그러나 지난 2월28일 일도 채 끝내지 못하고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뒤늦게 사고소식을 들은 노동조합(위원장 문상기) 간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바닥에 피가 흥건한 채 차들은 다시 계량대로 들어가기 위해 서로 밀치기를 하고 있었다. 중상 이상의 부상이 발생했을때 노조에 곧바로 알려야 하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사고통보를 하지도 않은데 분개한 노조는 계량대에 승용차를 주차시켜 작업을 중지시켰다.

사후 약방문식 작업중지였다. 이나마도 이번 노조집행부가 사측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 위험 발생시 보건위원들이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신설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전까지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작업을 강행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허씨의 경우처럼 안전규정은 현실적 위험을 느껴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무용지물이다. 물리력을 행사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한 작업장의 위험을 제거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현대그룹 산하 인천제철 노동조합은 현재 회사와의 단체협상에서 ‘작업중지권’ 조항의 신설을 중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인천제철에서는 올해만도 수십건에 이르는 절단사고와 화상, 추락, 사망 사고가 있었다. 지난 5월에도 용해조작실 안에서 자동 스위치를 잘못눌러 8m 높이에서 3명이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용광로 노각위에 올라가 고철을 삽으로 밀어넣는 일을 해야하는 이들은 항상 추락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은 물론 1천6백도에 이르는 용광로 노각은 흐믈흐믈할 정도로 뜨거워 대부분 발바닥 화상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고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들의 상황판단이 존중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안전시설도 문제이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이른바 ‘인재’라는게 노조의 시각이다. 허술한 안전조치, 사고가 우려되는 위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이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시키는데서 일어나는 사고가 대부분이라는 것.

반면 사측은 노조가 작업중지권을 갖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천제철 노무관리팀 노윤호 차장은 “작업에 위협을 느낄 때 피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노조의 작업중지권은 사측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노사간의 현격한 시각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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