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우리가 쫓겨난다고 신문에서 써준 적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통곡한다고 텔레비전에 비춰준 적 있습니까. 우리가 살게만 해달라고 호소할 때 기자님들이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오늘 같은 일이 없었을 겁니다. …기자님들 제발 양심 좀 찾으세요. 불쌍한 우리를 두 번 죽이십니까. 조중동 기자님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경찰 특공대는 우리 아저씨를 죽였지만 여러분들은 우리 가족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23일 밤 8시30분 서울 중구 봉래동 서울역 앞.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연단에 올라섰다. 국민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어내리자 시민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 한 유가족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뿐입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라며 말을 끝맺자 시민들은 "힘내세요. 독재 타도. 명박 퇴진"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매서운 한파에도, 설 연휴를 앞두고 귀성 준비에 분주할 터인데도 시민들은 3000여 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 1700명)이나 모여들었다. '이명박정권퇴진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추모대회' 첫 모습이었다. 

이날 첫 추모대회에선 철거민에 대한 정부, 검찰, 경찰의 행태 뿐 아니라 언론의 보도도 주요 화두가 됐다. '화염병' 등을 부각시키며 철거민을 '폭도'로 묘사했지만 정작 그들의 처지에 대해선 귀 기울이지 않았던 언론에 대한 정면 비판이었다.

   
  ▲ '이명박정권퇴진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추모대회'가 23일 오후 7시에 서울역 앞에서 열렸다. 추모대회 맨 앞에 앉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이정희 홍희덕 의원 모습(왼쪽 두번째부터)도 보인다. 정치인 중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참석했다. 최훈길 기자 chamnamu@  
 

"지금 언론에선 모든 책임을 철거민에게 돌리고 있다"

박진 진상규명대책위 활동가는 연단에 올라 "지금 언론에서는 모든 책임을 농성 철거민에게 돌리고 있다. 화염병을 통해 건너편 (건물에) 불을 내고 위험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경찰이)무리한 진압을 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그는 "용역 직원들이 망루 건물 2층 또는 3층에서 폐 타이어, 나무 등을 불지르는 방화행위하고 있지만 소방차는 진압 안 했고 경찰은 발표도 안 했다"며 언론 보도의 문제를 에둘러 비판했다.

언론에서 폭력적인 장면에 집중하기보다는 철거민의 '열악한 현실'에 집중해달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전국철거민연합회 소속 한 활동가는 연단에서 "왜 저희가 그곳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길거리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고 철거 용역과 우리 싸움에 동지들은 다쳐가고 지쳐갔다"며 "최후 결정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죽으려고 스스로 올라간 것은 아니다. 단 한마디 협상도 말하지 않고 김석기(서울 경찰청장)동지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제 저희 철거민들을 폭도로 몰고가고 있다"며 "우리도 소박하게 폭력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려고 했다. 설날에 길거리에서 내가 죽어서 이렇게 될지는 몰랐다"고 토로했다.  

   
  ▲ 최훈길 기자 chamnamu@  
 

"이명박 대통령·정부·여당, 보수 언론 앞세워 여론 호도"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인간의 존엄과 양심을 수호하고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국민 여러분께 호소한다"며 '1차 범국민대회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충견과도 같은 검찰과 보수 언론을 앞세워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본다"며 "살인자가 치안 총책임자로 둔갑하고, 건설 자본과 땅 부자의 이윤 놀음에 서민들이 길거리로 내몰려야 하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호도하는 이 부당한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의로운 싸움에 국민 여러분의 힘을 모아 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이어 당장 △ 구속된 철거민 석방 △김석기 청장과 원세훈 장관 파면 △참사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뉴타운 개발 사업 전면 중단 △오세훈 서울 시장, 박장규 용산구청장의 즉각 퇴진 △철거민에 대한 적절한 이주 대책 마련 △충분한 보상을 위한 국회 관련법 제정 △사망자·유가족·국민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 등을 촉구했다.

그러자 시민들은 "폭력정권, 살인정권, 이명박 정권 퇴진하라", "구속동지 석방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개발 경쟁 중단하고 민중 생존 보장하라"고 함성을 질렀다. 

   
  ▲ 용산 참사로 고인(故人)이 된 철거민들 모습이 영상에 나오자 유족 및 관계자들이 눈물을 터트리고 있다. 최훈길 기자 chamnamu@  
 

추모 대회 2시간 내내 "독재타도 명박퇴진" 함성

이날 추모 대회가 열린 서울역 부근에선 선전전도 진행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역으로 출입하는 시민들을 향해 대회가 시작한 오후7시부터 2시간 여 동안 "독재타도 명박퇴진"을 외쳤다.

일부 시민들은 서울역 내에서 '이명박정권퇴진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http://mbout.jinbo.net)에서 발행된 선전물을 귀향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범국민위는 선전물에서 △매일 저녁 7시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규탄 촛불 추모대회 △31일 오후 4시 청계광장에서 2차 범국민 추모대회 개최 △합동분향소(순천향병원, 용산 참사현장 분향소), 인터넷 분향 참여 및 추모 댓글 남기기 △청와대 및 경찰청장에 대한 항의 글 남기기 △추모와 규탄 행동을 위한 추원금 모금(후원계좌 농협 067-02-302163 예금주 이종회) △가족 및 일가 친척 등 지인들에게 용산 참사 알리기 등을 제안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서총련' '애국한양' '자주안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깃발을 들고 나왔고,  '대한민국 인권은 죽었다', '학살금지 진상규명', '학살만행 이명박 퇴진'이라는 손팻말을 보이기도 했다. 또 대학생들도 단체 깃발을 들고 와 눈길을 끌었다. 이승연(21·인천)씨는 "잘 몰랐는데 유가족 얘기를 듣고 나니 조세희 선생의 소설 난쏘공에 나온 시대와 다를 게 없다는 것 느꼈다"며 "가난한 사람을 내몰고 정권이 부자들을 위하는 것 아닌가"라고 잘라 말했다.

1000여 명의 시민들은 이날 밤 9시부터 용산, 신촌, 홍대 등으로 거리 행진을 했다. 500여 명의 시민들은 밤 11시20분께 홍대 부근에서 충돌 없이 자진 해산했다. 

[전문] 유가족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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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가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많이 추모회에 모여 감사드립니다. 사건 지나고 며칠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혹한 사건으로 한 순간에 남편을 잃고 나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할지 머릿 속이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우리 아저씨들이 과연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었는지. 유가족들에게 아무런 말 없이 시신을 훼손하고 부검했는지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죽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집 없고 건물 없는 사람은 나가라면 나가라면 엄동설한에도 집에서 쫓겨나고 수십 년 장사한 곳에서도 고스란히 물러나는 것이 이 나라입니까.

좋아서 농성하고 옥상에 올라가겠습니까. 우리는 큰 욕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세 끼 밥 먹고 자식들 굶지 않고 세 끼 먹고 살기만 해달라는 것밖에 우리는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힘들고 가혹한지 모르겠습니다. 모두 가장을 잃었습니다. 어린 자식과 어떻게 살지 벌써부터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상을 밝히는 것입이다.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왜 이렇게 죽어갔는지 온 세상이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쫓겨난다고 신문에서 써준 적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통곡한다고 텔레비전에 비춰준 적 있습니까. 우리가 살게만 해달라고 호소할 때 기자님들이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오늘 같은 일이 없었을 겁니다.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국회의원, 정치인도 찾아오곤 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를 한 번만 돌아봐 주셨으면 우리 아저씨는 안 죽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하루 종일 우리 유가족은 시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었고 시신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왜 내가 내 남편의 시신을 찾겠다는데 경찰의 허락 받아야 하고 왜 우리 경찰이 방패를 서고 막아섭니까. 싸우고 싸워서 간신히 시신을 확인하는 유가족의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짐작도 못하실 것입니다. 새까맣게 불에 그을린 시신은 부검이 되어 만신창이 됐습니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찔리는게 많아 몇 시간 만에 부검을 해야 했을까요.

어떤 기자분이 그러시더군요. 법적으로는 가족 동의 없이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구요. 무슨 법이 그렇습니까. 무슨 법이 그렇게 야박합니까. 그 시신이 철거민 시신이 아니라 돈 많고 높은 사람 시신이었어도 그럴 수 있었을까요. 아닐 겁니까. 절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집주인한테 무시당하고 정부한테 버림 받았습니다. 우리도 장사를 하면서 세금내고 장사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주민도 아니라는 말입니까.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리 아저씨, 철거민 주민들의 진실을 밝혀낼 겁니다. 진실 밝혀내고 우리 아저씨 명예를 회복까지 우리는 절대로 죽지도 못할  겁니다. 국민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힘을 보태주세요. 가난한 우리들 힘으로는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기자님들 제발 양심 좀 찾으세요. 불쌍한 우리를 두 번 죽이십니까. 조중동 기자님들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경찰 특공대는 우리 아저씨를 죽였지만 여러분들은 우리 가족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경찰이고 정부 사람이고 누구한테도 미안하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만 행복하게 사는 나라 만들지 마시고 돈 없고 빽 없는 우리 철거민들 같은 사람들도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세요. 돈 없고 빽 없는 철거민들 살 수 있는 나라 만들어주세요. 다시는 우리처럼 불행한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됩니다. 국민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우리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부는 사과해라, 책임자를 구속해라. 우리 아저씨를 살려내라' 목소리 높여 외치고 싶지만 오랜만에 명절에 고향가시는 분들 고향 편히 가시라고 소리 지르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뿐입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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