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시사인 제공
"기자하기 힘든 세상이다. 언론이 보도하지 못하는 성역이 늘어나고 있다."

19일 서울 종로구 교북동 '시사인' 사무실에서 만난 주진우 기자는 지난 14일 'BBK 1심 재판'에서 패소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2007년 12월4일. 그는 'BBK 사건'을 조사하던 검찰이 사건의 핵심인물이던 김경준씨에게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면 형량을 줄여주겠다'고 회유했다는 내용이 담긴 김씨의 자필메모를 입수해 보도했다. 미국으로 날아가 며칠 동안 김씨의 누나였던 에리카 김을 설득해 얻어낸 특종이었다.

이 보도는 검찰의 회유·협박 논란으로 비화됐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검찰은 시사인과 주 기자를 상대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6억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언론계에서는 검찰이 무리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견해가 많았다. 시사인은 물론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등과 같은 언론단체들은 검찰이 언론중재위원회 등 피해구제 방법이 있음에도 형사소송이 아닌 억 대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은 언론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1년이 흐른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한호형 부장판사)는 시사인과 주 기자에게 3600만 원을 배상하라며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주진우 기자는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이번 판결은 기자에게 함부로 펜을 들지 말라는 것이다. 10년 동안 기자를 하면서 이렇게 비참한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실망한 부분은 재판부가 김씨의 옥중메모의 존재가 허위가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면서도 배상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언론의 사회 감시기능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것이다.

그는 "김씨의 자필메모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작성한 것이 아니다. 면회 온 장모와 필담을 나누면서 검찰이 당시 이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면 형량을 줄여주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고 물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리카 김도 처음에는 옥중메모에 대한 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까 나중에서야 메모를 공개한 것"이라며 "김씨가 에리카 김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사안을 갖고 상의하는 통화내용(녹취)도 들려줬다"고 덧붙였다. 자필메모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황이었다는 항변이다.

주 기자는 "당시에도 지금도 변함 없이 그 내용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날 상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보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검찰이 소환조사 하겠다고 나서면서 에리카 김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그녀가 재판에 불리한 내용의 편지를 검찰에 전달했지만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시사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론 전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례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 그는 "한겨레도 BBK 사건과 관련해 50억 원의 소송이 걸려있는 등 언론보도에 대해 소송으로 대응하는 일이 늘고 있다"며 "기자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길 것은 처음부터 보도하지 말자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기자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돼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 축소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싸움은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번 싸움은 '언론의 공적가치'와 '권력의 사적가치' 간의 싸움"이라며 "기자에게 펜을 함부로 들지 말고, 글을 쓰지 말라는 압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시사인과 주 기자는 재판 결과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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