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신문사, 외국자본의 방송사업 진출을 허용하는 방송법 개정안과 관련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19일 "낙관적으로 예측할 경우 생산유발효과가 2조9000억 원, 취업유발효과가 2만1000명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방송통신업계 일선에서는 불확실한 예측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KISDI 방송정책연구실은 19일 발표한 '방송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에서 위와 같은 수치를 제시하며 "방송법 개정안에 의한 규제완화는 신규사업자 진입과 추가자본 유입으로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시키고 방송콘텐츠의 품질을 제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방송규제 완화가 방송 플랫폼과 콘텐츠 부문간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시켜 방송시장에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콘텐츠 매력 낮아 방송 산업 성장 못한다?

KISDI가 이렇게 전망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방송부문 소유규제는 해외 주요국에 비해 과도하고 △최근 방송부문 저성장 추세의 원인은 낮은 콘텐츠 매력도에 있어 이를 해결해야 하며 △방송부문 규제완화로 신규 사업자 진입과 추가자본 유치가 이뤄질 경우 투자여력을 확보한 사업자간의 콘텐츠 품질 경쟁이 확대될 것이라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방송통신업계 일선에서는 방송시장정체의 현상과 원인, 처방, 그로 인한 효과 및 결과를 도출하는 KISDI의 논리구조가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KISDI는 방송시장의 정체의 원인을 광고시장의 성장 정체 외에 콘텐츠의 낮은 품질에서 찾았다. KISDI는 콘텐츠의 품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으로 소유규제완화를 제시했고, 이게 해결되면 자본이 유입되고 투자도 촉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 결과는 매출확대와 고용창출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KISDI는 "방송시장 규제완화는 결과적으로 고품질 방송콘텐츠 제공을 촉진하게 되고 이는 방송플랫폼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시청자의 지불의사를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5년 이후로 자체 콘텐츠 생산에 주력해왔던 CJ미디어나 온미디어와 같은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들도 수익성 악화와 투자여력 부재로 손을 들고 있는 상황이다.

고품질 콘텐츠 만들면 수신료 올려 받을 수 있나

우리나라의 낮은 ARPU(가입자당 평균매출액)는 외국에 비해 경쟁력이 낮은 콘텐츠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콘텐츠 매력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방송요금 지불의사도 함께 올라간다는 주장도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대기업·외국자본이 투입된 신규채널이 '고품질 콘텐츠'를 생산한다해도, 포화상태인 광고시장에서 파이 나눠먹기가 안 되려면 수신료 수익이 늘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국 평균 수신료 가격이 6500원인 케이블TV만 보더라도 지상파에 기존 MPP 등 유력 채널을 모두 볼 수 있는 현 방송시청상황에서, '고품질 콘텐츠'를 알라카르트(a la carte) 형식으로 묶어 판매한들 비싼 값에 이를 선택할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KISDI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지 않은 '고품질 콘텐츠'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결과적으로 ARPU와 광고수익을 높이는 콘텐츠가 '고품질 콘텐츠'라고 한다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KISDI 보고서 어디에도 규제완화로 인한 신규 방송진출 사업자들의 설립 비용이나 연간 투자비용, 손익분기점(BEP) 도달시점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데도 규제를 풀기만 하면 투자가 들어올 것이고 이를 통해 매출확대와 고용창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논리는 이상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KISDI의 보고서 작성 의도와는 상관없이 방송사업 신규진출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방송소유로 인한 간접적인 효과를 노릴만한 대기업들이나 방송사업에 들어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지상파 광고 판매율도 30%인데…

방송광고시장과 관련해서도 "ARPU와 마찬가지로 콘텐츠 품질을 향상시키면 광고수익을 확대할 수 있다"는 KISDI 주장에 대해 일선에서는 고개를 젓는다. 한 방송통신업계 관계자는 "최근 지상파 3사 광고판매율이 30%를 밑도는 것은 그만큼 콘텐츠 품질이 낮아져서인가"라고 되물었으며,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쪽도 이에 대해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기업의 광고비 축소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KISDI는 또한 "신규PP 진입 후 경쟁관계에 있는 동일 분야 기존PP의 매출액은 대부분 감소하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했다"고 주장했지만 인쇄매체 등 미디어 전체시장을 놓고 판단한다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천혜선 미디어미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디지털미디어트렌드에 실은 신문방송 겸영규제관련 논문에서 "방통위와 유관기관은 겸영의 효과를 해당 산업뿐만 아니라 전체 미디어산업에까지 확장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생산유발효과가 2조9000억원, 취업유발효과가 2만1000명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을 이끌어 낸 가정에 있다. KISDI의 가정은 △방송플랫폼 부문의 GDP 대비 비중이 규제완화 이후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증가한다 △규제완화 이후 GDP 대비 방송광고매출액 비중은 최소한 과거 5년 간의 평균수준을 회복하고 그 이상의 성장도 가능하다 등이다. KISDI 쪽은 지난 2일 "방송관련 규제가 없는 선진국의 GDP 대비 방송산업의 비율과 우리나라의 그것을 비교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에는 있지만 다른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가 없다면 이렇게 되지 않겠나 하는 예측"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규제 풀면 규제 없는 나라들만큼 성장한다? 주먹구구 성장률 추정

그러나 방송관련규제 유무가 GDP 대비 방송산업 비율을 결정하는 단일변수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현 불경기 아래 '방송광고 매출액 비중이 평균수준을 회복하거나 그 이상의 성장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 역시 그야말로 가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광고주협회가 지난해 12월 188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2009년 광고경기전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55개 사의 70%가 불경기 등을 이유로 광고예산을 줄일 계획이라고 응답한 바 있다.

고용창출 예상치도 규제완화에 따라 GDP 대비 0.75%로 시장규모가 증가한다는 예상값에 한국은행 산업연관표를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대기업이 방송에 진출하고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되면 KISDI 예측과 반대로 기존 인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최진봉 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대기업이 언론사를 소유하게 되면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려는 시장경제 논리로 언론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며 "신문사가 방송국을 소유하는 경우에도 인력과 정보의 공유를 통해 고용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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