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의 공보관 제도가 새삼 구설수에 올랐다. 진원지는 통일원이다. 대북 지원 정책 발표 과정에서 기자들을 속인 것이 발단이다. 기자들이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공보관의 기자실 출입금지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2주일이 흐른 지난 6월 26일 통일원의 한 출입기자는 다소 ‘독특한 해석’을 내렸다. 한 마디로 “대변인이 기자실에 출입하지 않아도 불편한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새로운 발견이라고 표현했다. “기자들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공보관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기자의 관점은 ‘공보관 무용론’에 가깝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공보관이 ‘구조적 피해자’라고 입을 모은다. ‘언론기피증’이 만연된 공직 풍토에서 공보관이 그 만큼 설자리가 좁고, 소위 ‘끗발’도 없이 가슴앓이를 하는 고된 자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문제가 된 통일원 김경웅 공보관의 경우 공직 생활 틈틈히 공부를 계속해 한양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공보관 무용론’ 불거져

‘공보관 수난시대’를 보여주는 징후는 또 있다. 서울시청이 그곳이다. 1년사이 3명의 공보관이 바뀐 것이다. 지난 6월초 3번째로 조광권 공보관이 부임했다. 두명의 전임 공보관은 기자들이 ‘비토권’을 행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민선체제 첫 공보관으로 부임한 조모 부이사관(3급)은 기자들이 ‘함량미달’이라며 조순시장에게 항의를 할 정도로 기사릴리스 등이 엉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5개월을 채 넘기지 못했다. 두번째 공보관이었던 정모 부이사관도 마찬가지. 서기관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처음 맡은 보직이었고 의욕도 남달랐으나 기자들 사이에서 ‘시원치 않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6개월만에 경질됐다.

조순시장은 급기야 보사국장, 교통심의관 등 요직을 두루거친 조광권 이사관(2급)을 공보관에 투입했다. 한단계 더 높은 직급에 비중있는 인물을 공보관 자리에 앉힌 것이다. 그만큼 조시장이 공보관 문제로 곤혹스러워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서울시의 잦은 공보관 교체는 공보관이라는 자리가 얼마만큼 기자들의 보도과정에 영향을 끼치는지 시사하고 있다. 기사가 많은 곳일수록 이같은 기자와 공보관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공보관의 업무는 ‘기자관리’와 깊숙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적 언론풍토에서 공보관의 대의명분이랄수 있는 ‘국가 홍보’는 아직 ‘원론’ 수준이다. 그 보다는 ‘이기주의성 부처 홍보’의 성격이 짙고 더 깊게는 ‘기자관리’가 업무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문제가 될 성 싶은 기사를 잘 빼고, 평소에 원만한 인간관계로 기자들의 ‘시야’를 되도록이면 한 곳에 묶어 두는 것이 그간 능력 있는 공보관의 ‘미덕’으로 이해되어 왔다.


다층적 홍보활동 있어야

이런 해묵은 관행에 최근 균열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가 철저히 통제돼 있던 시대와는 달리 언론의 취재 ‘영역’이 더욱 넓어지는등 급속한 환경변화가 가속화되면서 공보관제를 바라보는 기자들과 정부당국의 시각이 과거와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들과의 인간관계 하나로 버티던 시대는 갔다. 정책결정 과정에서부터 홍보 마인드를 주입시키는 다층적인 홍보기능이 절실하다.”(국민일보 전국부 정재학 차장)

“기자만을 위한 업무에서 벗어나야 하고 기자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하루 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투명행정을 이끄는 전위대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동아일보 모 차장)

“윗 사람들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한채 순간만 넘기고 보자는식의 미봉책을 찾는 관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경향신문의 한 기자)

기자들의 주문은 한 곳을 향한다. 기자들에게 밥이나 사주는데 만족하는식의 축소지향형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틀속에서 벗어나 조금 더 당당하고 창의적인 모습을 보여달라는 얘기다.

이같은 기자들의 문제의식은 공보관 자신들이 더 절실히 느끼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자들의 요구에 공보관들의 응답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자신들의 문제는 곧 외부환경의 소산이라는 해석이다. 정열을 소진시키고 창의성을 저해하는 취재보도시스템, 부처간의 영토싸움이 극심한 공무원 사회의 특성, 여기에 공보관 자신들에게도 ‘비밀’을 지키는 부서기밀주의가 ‘건재’하는 한 개선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총론’을 넘어서 ‘각론’에 들어가면 공보관들의 변화를 가로막는 ‘난제’는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언론비판도 훨씬 신랄하다.

한 공보관은 “익명성이 기사 소스의 중심인 경우가 많다. 취재원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도 다반사다. 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하면 ‘취재원 보호’를 내세워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런 상태에서 홍보대책을 세우고 장기적인 전망을 어떻게 가지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공개정보를 엄밀히 분석하려하기보단 실무자들의 기안서류에만 눈독을 들이는 기자들도 있다”
며 “기자들의 특종 경쟁이 워낙 심하다보니 백그라운드 설명을 하고 싶어도 왜곡된 형태로 기사화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이기호 공보관은 “사무관급의 정책 초안이 언론에 의해 ‘정책결정’으로 보도된다. 정책결정과정에서 당연한 ‘수정’을 거치면 이번엔 ‘정책 표류’로 나간다. 공보관은 해당 부서 실무자와 기자들 모두에게 원망과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3월 한 조간지가 재정경제원을 비판적 시각에서 해부하는 기획기사를 연재할때는 일부 젊은 관료들이 집단적으로 공보관실에 몰려가 항의성 대책 마련을 요구할 정도로 조직 내부의 이해도도 낮은 실정이다.

이 탓인지 공보관은 공무원사회에선 대표적인 한직으로 통한다. 이를 감안해 청와대나 공보처는 공보관을 일단 인기있는 자리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김영삼 대통령이나 오인환 공보처 장관 모두 취임 초기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보관을 부서내의 최고 엘리트로 채우라고 주문했다. 인사상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라는 대통령 지침이 각 부처에 시달되기도 했다.


‘질적 개선’ 더딘 걸음

실제로 ‘공보관’ 지원 부서인 공보처 등도 언론인들을 초청해 밀착형 세미나(96년 5월 22일, 워커힐 호텔)를 가지는가하면 각 부처의 보도내용을 면밀히 분석한 ‘보고서’를 매달 각 부처 공보관들에게 전달하는 등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질적 개선’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공보관을 거친 몇몇 인사는 유력한 장관 후보감으로 거명될 정도로 부서내 엘리트들이 공보관으로 부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직 사회 안팎의 인식과 업무 내용의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사례들이다. 국방부 등 일부부처는 미 국무부 등에서 시행중인 ‘정례 브리핑제’를 도입해 정착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들이 긍정적인 모습을 갖춰 현실로 나타나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것 같다. 아직은 언론이나 정부 모두 공보관들에게 입으로는 ‘프로’이길 요구하면서도 실제 일상생활에선 ‘아마추어적’ 대응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공보관들을 취재하던 지난 26일 과천청사내의 한 공보관은 차관의 발언이 기사화되는 것을 막기위해 공보관실 직원을 총 동원, 새벽녘까지 총력 로비를 펼친 결과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전과’가 전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언론의 익명성을 강도 높게 비판한 한 공보관은 기자에게 역설적으로 ‘익명’으로 기사화 해줄 것을 주문했다. 공보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