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법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입법예고될 때도 비공개 대상이 너무 많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중대한 이익’ ‘현저히 해할 우려’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등 행정기관의 포괄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문제가 됐으나 이 ‘원안’마저 정부부처의 반발로 상당히 후퇴함으로써 법 제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총무처가 지난해 입법예고된 원안을 손질해 최근 확정한 정보공개법안은 당초 정보공개 제외대상이 아니던 △통상협상등과 기술개발 관련 △통일관계 △대외경제 협상 과정에서의 논의사항 △부동산 관련 정보등을 공개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보공개 거부 결정에 대한 불복심사를 원안에서는 독립적인 ‘정보공개위원회’가 하도록 했으나 이도 행정심판위원회로 넘기고 있다.

총무처는 △국가안전이나 국방 또는 외교관계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공공기관 내부의 인사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당해기관의 인사관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는 정보 △공개될 경우 공공기관의 의사결정등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등 원안에 있던 9개항의 공개대상 제외 정보는 이번 수정안에서도 그대로 포함시켰다.

결국 지난해 입법예고안에서 학계나 시민단체의 개선 요구는 외면하고 정부 각 부처의 반발은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정보공개법 입법을 추진해온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정책연구실 고계현간사는 “정보공개법이라기보다는 ‘정보비공개법’ ‘비밀보호법’에 가깝다”는 말로 시민단체의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정보공개법 심의위원회’에 언론계 대표로 참여, 지난해 7월 입법예고안을 만들었던 유승삼 중앙일보 논설위원도 “당시 안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정부부처와 행정관료들의 반발이 심할 것을 예상해서 어떤 측면에서는 ‘현실과 타협’해서 만든 안이었다. 그러나 이것마저 수용하지 않고 정보공개 제외대상을 늘리고 이의절차도 정보공개위원회가 아닌 행정심판위원회로 넘긴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총무처 당초 계획은 지난해 7월 입법예고를 한후 정기국회에서 법을 제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입법예고 직후 법제처 심의와 차관회의 과정에서 정부 각 부처의 반발로 이 안은 총무처로 반려됐다. 재정경제원등 경제부처는 금융정보는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통일원은 대북정책의 혼선과 안보위협을 우려해 통일관련 정보를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보처는 공개된 자료의 사용과 관련한 벌칙조항의 삽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부처의 이런 반발이 이번 총무처 안에서는 대체로 수용됐다. 정보 공개 제외대상 정보에 대한 포괄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등 문제점에 대해서는 묵살했다. ‘빈껍데기만 남은’ 법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와 관련 국민회의가 독자적으로 정보공개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경실련도 시민단체의 입장을 담은 정보공개법을 국회에 청원할 계획으로 있다. 이에 따라 올해말 정기국회에서 정부안과 이들 2개 법안을 놓고 격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한가닥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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