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말 언론은 “미 정부가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전두환대통령의 군 투입 계획을 승인했으며 80년 5월22일 소집된 백악관회의에서는 사태가 통제불능으로 악화될 경우 미국이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방안도 협의됐다”는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다. 광주지역 언론은 이를 머릿기사등으로 연일 크게 보도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광주항쟁의 ‘미국개입설’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정부, 은폐로만 일관

이 보도는 미국의 <저널 오브 커머스>지가 지난 2월27일 미국의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기밀해제된 미국정부 비밀문건들’을 인용해 보도한 것을 국내언론이 받은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진압을 알고 있었다’는 제목으로 이 기사를 쓴 <저널 오브 커머스>지의 콤 셔록 기자는 “미국정보공개법에 의거해 지난 90년부터 시도한 결과 미 국무부와 국방정보국(DIA)의 관련 비밀문건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미국의 정보공개법이 한국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준 것이다.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미국이 광주에 대한 군 투입을 승인했다”는 기록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간의 차이는 미국엔 정보공개법이 존재하고 한국엔 없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한국 국민에게 더욱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미국 언론이 먼저 보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의 입장에선 대단한 ‘치욕’이다.

그 치욕의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대중씨(현 국민회의 총재) 납치사건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행위라는 것을 구체적 사실로 증명한 것은 일본의 한 통신사였다. 이 통신사는 미국의 ‘정보자유법’(FOIA, Freedom of Information Act 미국의 정보자유법은 외국인의 정보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에 의해 미 정보기관의 자료를 입수해 이를 보도했다. 당시 한국국민이면 누구나 갖고 있던 ‘심증’을 ‘사실’로 확인시켜준 것이다. 역시 정보공개법이 숨은 공신이었다.

정보공개법은 이처럼 취재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거나 묻혀진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유용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려는 언론의 노력과 기교가 필요하겠지만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려있다.

숭실대 강경근교수(법학)는 일본 나카소네 정권이 몰락하게된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록히드사건’도 일본의 한 언론사가 FOIA에 의거해 청구한 미 CIA의 정보제공에서 비로소 알려지게 됐을 정도로 정보공개법의 활용범위는 대단히 넓다고 밝혔다. 미국언론은 이 정보자유법을 이용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레이건 행정부시절 미국정부는 “산성비는 유해하지 않다”며 “산성비는 산업활동이 초래한 유해한 결과”라며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단체등의 요구를 막아왔다. 그러나 언론이 이 법을 이용, “산성비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내용이 실린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입수해 이를 폭로함으로써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정보공개법 심의위원회’에 언론계 대표로 참여했던 유승삼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정보공개법의 제정이 취재환경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위원은 “오랫동안 행정편의주의와 비밀주의에 길들여진 관료들은 대체로 모든 정보를 감추려고 든다.

괜히 기자들에게 정보나 자료를 내주었다가 문제가 될 경우 웃사람들의 질책이 두렵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법은 공무원들이 갖는 이런 두려움을 제거해 줄 수 있다. 어차피 공개돼야 할 내용이기 때문이다. 언론사의 입장에서도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서 기사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오보의 가능성을 상당히 줄여줄 것이다”고 말했다.


‘국익포장’ 정보독점

정부 부처를 출입해본 경험이 있는 거의 모든 기자들은 관료들의 비밀주의에 혀를 내두른다. 정부가 모든 정보를 ‘독점’해온 뿌리깊은 관행이 그 원인이다. 이는 ‘언론기피증’으로 나타난다. 한 정부부처 공보관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부처 이름이 가급적 적게 언급돼야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게 현실이다. “언론에 보도되면 귀찮은 일만 생긴다”는게 관료들의 일반적 생각이고 이는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경향으로 연결된다.

정보공개법은 관료들의 이런 ‘닫힌 사고’를 뒤흔들어 놓을 것이 분명하다. 정보공개법은 모든 정보는 ‘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가 예외’라는 원칙의 정립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관행으로 뿌리내리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흐름은 그렇게 갈 것이다. 정보공개에 대한 ‘법적 강제’가 그것을 가능케하는 디딤돌이다.

물론 여기엔 전제가 필요하다. 정보공개법이 말 그대로 “모든 정보는 공개한다”는 원칙에 맞게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각 부처의 반발로 비공개 대상 범위가 대폭 늘어남으로써 법의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언론 주무부서인 공보처의 경우 공개된 자료를 언론이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벌칙조항’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공개된 자료를 언론이 ‘올바르게 공개’해야 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다.

언론의 적극적인 감시와 견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언론이 당사자로서 정보공개법의 1차적인 수혜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부처와 언론간의 이러한 갈등은 끊임없이 되풀이돼왔다. 이른바 ‘알권리’와 ‘국익’간의 갈등이다. 대개 정부가 ‘정보독점 욕구’를 국익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에 재벌의 부동산 투기 실태 자료를 넘겨준 것이 문제가 된 이문옥감사관 구속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한겨레신문이 지난 90년 5월 11일자 1면 머릿기사로 ‘재벌기업 비업무용 부동산 43%, 은행감독원의 1.2%와 큰 차이’란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보도되면서 발단이 됐다. 사흘후 제보자인 이문옥감사관이 ‘직무상 비밀누설죄’로 검찰에 구속됐다. 재벌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정보가 ‘비밀’로 보호된 사례다. 이감사관 사건은 훗날 무죄로 종결됐다.


취재영역 새지평 마련도

외국의 경우도 알권리와 국익을 둘러싼 언론과 정부의 대립은 언론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월남전 개입의 명분을 삼은 미군부의 부도덕성을 폭로한 뉴욕타임즈의 <엘즈버그사건>, 일본 외무성의 하스미(蓮見) 사무관이 마이니치 신문의 니시야마(西山)기자에게 ‘오끼나와 교섭 미일간 밀약 전보’ 문서의 사본을 넘겨져 폭로함으로서 문제가 된 하스미 사건이 그것이다.

이 두 사건은 민주적 보편 가치로서 언론에 의한 정보공개가 국익을 위한 정보제한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스미 사건>과 관련, 동경지방재판소는 ‘외교교섭의 결론 뿐만 아니라 교섭중의 구체적 과정도 공공적 관심사항에 속하는 것으로 국민적 감시나 공공적 토론을 거치면서 민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마이니치 신문에 무죄판결을 내렸다.

어떤 면에서 정보공개법은 언론과 정부,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이같은 해묵은 논쟁을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정보는 국민과 함께 공유한다는 원칙을 구체적 현실로 만들어 가려는 사회적 합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사회적 합의는 언론 취재영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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