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한다. 너무 진부하다고? 그렇다면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가정이 있고 존경까지 받는 대학교수님과 신문사 문화부의 젊은 여기자가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면 어떨까?

채호기의 시집 <지독한 사랑>으로부터 제목과 영감을 빌려 만들어낸 이명세감독의 <지독한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첫인상은 불륜에 대해서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에게서 불륜은 일종의 모험이며, 동경이고, 돌아보는 순간 추억이다. 이명세는 도덕이 아니라 불륜의 편에 서서 기꺼이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혐보기를 권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와 아이가 있고, 시집도 낸 점잖은 대학교수 영민(김갑수)은 우연한 자리에서 자신의 시집에 관해 서평을 쓴 신문사 여기자(강수연)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 눈에 사랑에 빠져 여관을 전전하며 서로를 탐닉한다.

그리고는 두달간의 겨울방학을 빌려 한적한 바닷가의 낯선 집에서 제한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싸우고, 서로 증오하고, 서로 감싸 안는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는 날,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진다.

불륜은 ‘발각당하지 않은채’ 멜로드라마의 수순을 밟아 나아간다. 놀랄만큼 60년대 한국 ‘신파’영화의 이야기를 그대로 닮아있는 이 영화에서 이명세는 처음부터 갈등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보다는 처음부터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이 어떻게 서로를 망가뜨리고 괴롭히면서(사랑의 메타 내러티브) 그 과정 속에서 불륜이라는 사랑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도덕의 메타 내러티브)를 따라간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는 감정의 드라마이며, 또 한편으로는 관찰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두 사람으로부터 항상 일정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이제 사랑은 둘 사이를 어쩔 수 없이 하나로 엮어내는 실타래이면서 바로 그 순간 도덕은 실타래를 매번 엉망진창으로 뒤엉키게 만드는 구조이다. 그럼으로서 구조는 위험하게도 매번 이 지루한 사랑이야기를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드라마의 힘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도덕이 만들어내는 힘과 구조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정작 불륜에 빠진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내면적인 갈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불륜과 함께 동시에 도덕에 관한 근심에 잠기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 이명세의 ‘지독한’ 사랑이 끝까지 물어보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지독한’ 사랑은 자신의 주인공들이 그 스스로의 내부에로 점차 빠져들면서 모든 외부를 잊어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명세는 영민과 영희의 불륜을 매우 제한된 단칸방 속의 폐쇄된 사랑으로 몰고 간 다음 거의 가둬버리다시피 한다. 그들은 거의 꼼짝달싹 할 수 없을만큼 좁은 공간에서 살을 맞대고 비비면서 체온을 느끼고, 그리고 서로 도망칠 수 없는 거리에서 격렬하게 싸운다.

이 모든 감정은 그들이 눈오는 날 정사를 갖는 장면을 장시간 촬영의 롱테이크(4분30초)로 창문 저편에서 아주 슬픈 감정을 갖고 보여주는 장면에서 감동적으로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못한다.

그 막다른 골목의 마지막 순간이 결국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은 처음부터 알고 있다. 아무런 깨달음도 없으며, 다시 그들이 돌아가야 할 순간이 오자 망설이지만 거기에 대해 저항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실패는 참으로 이상하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이 사랑에 실패한 채 원래의 위치에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도덕 자체를 타락시키지는 않겠다는 의지와 매우 가깝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만 그것은 그들이 문제삼으려는 근심이 아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서로 가족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헤어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불륜이 감싸 안으려는 사랑은 다시 가족의 문제로 회귀한다. 그들이 나눈 사랑은 정말로 그렇게 지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 내부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그들을 다시 원래의 가족에게로 돌려보내는 가족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야말로 사실은 이 영화가 영화 안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으면서도 결국에는 우리를 영화가 끝난 다음에 다시 되돌려 보내는 원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불륜에 관한 일종의 동화이다. 누구나 그저 잠시 아주 일시적으로 불륜을 꿈꾸어 보다가 계면쩍은 얼굴로 곁에 있는 가족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