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할머니가 아사히신문의 두 중견언론인의 안내로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속죄여행 목적으로 방한, 언론계 안팎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주인공은 일본 동경 긴자에서 ‘도키’라는 음식점을 경영하는 스기노 도키 할머니(72). 최근까지 아사히신문 한국지국장을 지내고 본사로 귀임한 오다가와 고 편집위원과 무토 마코토 포럼 사업국장이 스기노 할머니의 속죄여행에 함께 했다.

“한 20여년 전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뭐라할까, 이제야 개인적으로는 한국인들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월 22일 방한한 스기노 할머니는 종전 막바지 3년간을 한국, 당시의 조선반도에서 보냈다. 41년 지금의 인천 부평 백마장에 위치했던 조병창 창장의 비서 공모 광고를 보고 응모한 것이 인연이 돼 조병창 창장의 비서로 44년 3월경까지 근무했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때였습니다. 황국신민 교육에서 저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한번은 일본 장교가 조병창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무자들이 한국말을 썼다는 이유로 구타하는 것을 목격했어요. 왜 그래야 하는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어요.”

이 일본 할머니가 한일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일제가 한국등지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후이다. 사랑했던 일군 장교가 종전후 한국에서 자살하면서 겪어야 했던 개인적인 비운도 한 계기가 된 듯 했다.

“아마 개인적으로라도 속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일거예요. 일본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특히 정신대문제 등 전후처리문제에 너무 냉담한 태도로 처리한다는 생각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신대문제만 하더라도 일본 정부가 확실하게 보상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기노 할머니의 개인적인 속죄여행에 아사히신문의 두 중견기자가 같이한 것은 할머니가 경영하는 ‘도키’가 아사히신문은 물론 일본 언론계 인사들이 즐겨 찾는 일종의 언론계 사교클럽의 중심지이다시피하기 때문이다. 오다가와 편집위원은 “도키는 일본 언론인들의 토론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소개한다.

도키를 즐겨찾는 언론인들이 오는 12월 1일 일본 프레스센터에서 도키 개점 25주년 기념식을 열어줄 정도로 일본 언론인들에게 도키는 주요한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

스기노할머니는 마침 방한 일정이 겹친 하시모토 총리를 겨냥 “나와 같이 서울에 왔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며 한마디했다. 겉치레 ‘만남’으로 끝나버리고 만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기도 했다.

스기노 할머니는 두 중견 기자의 도움을 받아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는 과거 조병창이 있던 곳을 찾아 개인적인 ‘사죄의 의식’을 가졌다. 의식이라야 두 언론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가진 잠깐의 ‘묵념’ 같은 것이었다. “수난받은 한국민과 한국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전쟁시절을 그곳에서 그래도 잘지냈던데 대한 ‘감사’의 느낌이 교차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스기노 할머니는 24일 2박3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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