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은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진리로 간주되기에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사실, 다른 나라에서는 몰라도 우리 나라에서 이 사실은 진리로 간주된다. 대다수 국민이 검찰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 이 또한 상식에 속한다.

채영석 국민회의 의원의 대검찰 비난성 발언에 대해 검찰이 비분강개하는 것을 고소해 하는 국민 정서도 여기서 연유하는 것일 게다.

그래선지 시사만화의 검찰 비꼬기는 거침이 없다. 채영석의원의 발언을 기다리기나 한듯 대다수 시사만화가 채의원의 발언을 포탄삼아 검찰에게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시사만화에 비친 검찰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의 원조(‘허심탄’, 세계, 6월27일), 보복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함무라비 법전의 구현자 (‘나대로 선생’, 동아, 6월27일, ‘고바우 영감’, 문화, 6월27일), 편파·어용의 대명사 (‘세계 희평’, 세계, 6월27일) 등등. 모두가 비난 수위를 맘껏 끌어올리고 있다. 더 나아가 검찰을 불치병 걸린 한우(‘장도리’, 경향, 6월27일)에 비유하는 만화마저 있다.

이들 만화를 보면서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가려운 곳 대신 긁어주는, 시원스런 풍자에 박수라도 보내고픈 심정이다.

국민 상식에 의존하는 또 한 부류의 시사만화가 존재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는 상식에 힘입어 시사만화는 위법이 난무하는 15대 개원 국회로 눈길을 돌린다. 파행의 현장을 지켜보는 시사만화의 눈은 매섭다 못해 독이 올라 있다.

검·경 중립에 목을 건 야권이나 ‘배째라’고 나오는 여당이나 모두 ‘한심 찬란’하다 못해 신물이 난다는 눈길이다. 이 또한 옳은 시각이다. 더욱이 물가고, 수출 부진, 주가 폭락 등등, 각종 민생 현안마저 겹쳐 놓으면 이런 시사만화의 시각은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시사만화의 상식적인 시각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두 사안을 따로 떼어 놓았을 때 뿐이다. 두 사안이 합쳐지면 시사만화의 상식적인 시각은 구성의 모순에 빠진다. 시사만화 스스로 비난해마지 않았던 검찰 바로세우기에 나선 야권을 또 다시 비난한다. 개별적으론 타당한 이야기가 서로를 배척하는,

그래서 틀린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사만화가 모순을 자초한 데에는 준법이란 당위 명제에 대한 믿음이 자리한다. 하지만 이 논리는 역사를 통해 형성된 또 다른 상식에 의해 무너진다. 여권이 앞장서 검찰 바로세우기에 나선 적이 없다는 사실, 준법의 테두리에서 벌이는 온갖 몸짓으로는 여권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시사만화는 제3의 상식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사안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뒤 단 하나의 상식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을 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