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청일보 사태의 전개는 참으로 우려스럽다. 전 언론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안기부 고위 간부 출신의 사장이 물러나기는 커녕 오히려 득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안기부 외사국장 출신인 안병섭씨의 충청일보 사장 취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이미 이전에도 밝힌 바 있다. 지난 군사정권 시절 안기부가 자행했던 언론탄압 사례를 여기에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권부의 의중에 따라 정치공작과 언론공작을 총지휘한 언론통제의 첨병이 바로 안기부였음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안기부의 과거 전력까지 들출 필요도 없는 일이다. 언론과 안기부는 그 역할과 기능면에서 본질적으로 긴장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안기부가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면 언론은
바로 그 음지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런 활동들을 감시-견제하고 고발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맡고 있다. ]

은밀한 정보수집과 비밀공작을 주요 임무로 하는 정보기관의 고위 간부 출신이 열린 공간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대변하고 엄정한 비판정신에 입각해 사회환경을 감시해야 할 언론사 사장에 취임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밖의 일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정작 우려되는 것은 안씨가 고집스레 사장 자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언론계의 거센 비난여론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것도 지난해 한번 좌절된 사장직에 다시 취임한 것만으로도 언론사 사장직에 대한 안씨의 집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안씨가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고는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명색이 언론사를 경영한다면서 안기부 고위간부 출신을 사장으로 불러들인 충청일보 사주도 마찬가지이다. 충청일보 사태의 본질은 바로 더이상 언론이기를 포기한 충청일보 사주의 반언론적 사장 선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안타깝고 염려스러운 것은 지난해 안씨의 사장 취임에 앞장서 반대하고 나섰던 상당수의 기자들마저 안씨의 사장 취임을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한때 뜻을 같이했던 동료 기자들의 축출에 오히려 앞장서는, 언론인이라면, 아니 평범한 사람됨의 양식으로라도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 참으로 딱한 사정이다.

언론이 언론답지 못할 때 그 언론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이 겪어야 할 고뇌와 갈등이 어떨지는 지난 시절 수많은 언론인들의 집단체험으로, 화인처럼 낙인찍혀 있다.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낯을 들고 다니기 어려웠던 부끄러움이 지금도 ‘원죄’처럼 남아 있다. 그 부끄러운 치욕의 언론사를 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안씨의 사장 취임만이 왜 문제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사실 그렇다. 우리 언론의 모습은 아직도 상처투성이다. 사회의 목탁으로서 언론 본연의 사명과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언론사주의 사적 이익에 더 복무하는 언론이 적지 않음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같은 왜곡된 언론현실이 언론이기를, 언론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명분이나 도피처가 될 수는 없다. 언론인으로서 스스로 바로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공인으로서는 ‘죽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언론인이기에 앞서 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으로서, 생활인으로서 그 선택이 지극히 어려울지라도 기자들을 포함한 충청일보 임직원들이 언론인으로서의 자존과 자긍심을 지켜주기를 간곡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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