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습니다.” 충청일보의 한 기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충청일보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사측의 노조 분열공작과 이에 따라 일부 기자들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총무국의 김모 차장은 사흘전에 노조부위원장직을 ‘타의’에 의해 그만둔 박상득씨(총무과)를 만났다. 김차장은 이날 “박위원장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면 징계 수위를 낮출 수 있다”며 박 전부위원장을 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이를 거부했다.

이날 박 전부위원장 외에도 지난달 15일 회사측이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한 노조 간부 2명이 회사측 인사로 부터 이같은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부했다.

안기부 간부 출신 사장 안병섭씨 반대운동의 일선에 나섰던 박위원장을 해고함으로써 역공에 나선 회사측은 이제 그 비판세력의 근거지인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각종 공작을 펴고 있다. ‘노조 정상화’란 이름의 내부 분열시도가 그것이다.

지난달 26일 충청일보엔 ‘충청일보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공동대표 한덕현·박창식)란 이름의 임의기구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동조자를 규합해 사원 총회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28일 모임을 갖기도 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지난 4월19일 이후 노조가 주도해 온 안사장 퇴진운동으로 인해 회사가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정상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들이 들고 나온 ‘노조 정상화’의 방법은 박위원장의 퇴진이었다.

이는 ‘안기부 사장’을 사실상 받아들이자는 것이며 그간의 안사장 퇴진 운동의 ‘백기항복’을 의미했다.

한편 안씨가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지면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안사장이 충청지역 기관장 등 ‘외부 지원’을 기대하면서 신문을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부쩍 ‘안보’와 ‘반북’논리를 강조하는 논조의 사설과 칼럼이 늘어났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내용을 분석해 볼 때 과도하다는 분석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인 오늘날 간첩에 대해 간과해선 안된다”는 지난달 17일자 사설에 이어 18일자에서는 “친북세력을 길러낸 사람의 정치권 유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칼럼까지 냉전논리를 반영하고 있는 글들이 잇따라 게재됐다.

한 편집국 기자는 “주요 기사와 사설 등은 대부분 사장실을 거친다”며 이들 기사에 안사장의 의중이 개입됐음을 시사했다. 18일자 5면에는 사주인 임광수 임광토건회장의 둘째아들인 태양생명보험 임재풍부사장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됐다.

6월20일자 “건설업계 새로운 장 개척, 임광인 영광”이란 특집기사와 22일자 9면의 “최고 품질과 최저 분양가로 승부”의 경제특집 기사는 “충청일보가 임광토건 사보냐”는 빈축을 샀다. 이같은 충청일보의 논조와 지면 구성은 50년이라는 지역 언론사로는 보기드문 역사를 지닌 충청일보의 ‘본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충청일보는 지난해 8월 1차 안씨 사장선임 철회 투쟁이 진행될 때 이와 관련된 노조와 지역 사회단체들의 활동상을 비교적 비중있게 취급했다.

부끄러움을 과감히 공개해 도민으로 부터 격려의 뜨거운 박수를 받던 열린 언론의 모습을 보여준 충청일보였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충청일보 노조가 70여일 가까이 “안병섭씨 퇴진”을 외치고 있지만 충청일보 지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이와 관련 충청일보의 한 기자는 “지금 상황에서 안씨 퇴진운동은 충청일보를 살리는 운동”이라며 안씨 퇴진 운동의 절박성을 표현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