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로 상징되는 이승복어린이의 비극적 죽음은 남과 북의 증오와 대립을 표현한다. 이승복어린이의 친구는 영결식 조사에서 “원수를 갚아주겠다”는 야무진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그 ‘이승복 이야기’가 내년부터 교과서에서 사라진다. 교육부 사회과학 편수관실은 “평화와 통일이라는 시대 분위기에 맞춰 초등학교 5학년 도덕 교과서에 실려있던 이승복 관련 부분을 빼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향군인회 등 일부의 반발이 있긴 하지만 이승복 부분 삭제는 거의 확정적이라는게 교육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교육의 기본 방향이 ‘안보교육’에서 ‘통일교육’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넘어가기엔 뭔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승복과 언론’ 사이의 숨겨진 비밀 때문이다.

이승복 이야기의 ‘공산당이 싫어요’는 ‘조작된 신화’다. 이승복어린이는 언론이 만들어낸 냉전시대의 ‘우상’이자 ‘안보상품’이다. 언론은 68년 강원도 울진 삼척에 침투한 무장공비의 일가족 살해사건을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포장을 덧붙여 신화로 만들어냈다.

그것은 ‘작문’이라는 1차조작과 과장과 윤색이라는 두번째의 왜곡을 거쳐 ‘역사’로 만들어졌다. 사건이 터진 그 다음날 허겁지겁 현장에 도착한 기자들중 그 어느누구도 이승복군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유일한 생존자였던 승복군의 형 학관씨는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고 병원으로 후송된후 며칠후에야 깨어났다. 그가 기자를 만난 것은 사건발생 한달 후였고 그전에는 어느 기자도 만난 적이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것이 조작이고 작문임을 알면서도 언론은 입을 다물었다. 침묵만 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부풀리고 키우는데 앞장섰다. 초롱한 눈망울의 순진한 아이들을 “원수를 갚자”고 내몰기도 했다. 18년동안 그랬다. 허구를 사실로 조작하고 그것을 당당한 역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5공과 광주가 다시 거론되고 ‘역사 바로세우기’가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상황에서도 언론의 침묵은 변함이 없다. 그 비겁함은 끝내 언론에 의해 이루어졌어야 할 도덕 교과서에서의 삭제가 ‘남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치욕’으로 나타났다. 이젠 바로잡을 기회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새로 쓰여져야 할 우리의 언론사엔 이승복사건이 ‘사상최대의 오보’라는 기록과 함께 언론이 그것에 관해 한줄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는 더 큰 잘못이 덧붙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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