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문전쟁으로 조선일보와 삼성그룹이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사태가 연출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언론과 재벌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우호적’이다.

이런 우호적 관계는 재벌은 언론에 막대한 물량의 광고를 주고, 언론은 재벌의 약점에 대해 눈감아주는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더욱 공고해져 왔다.

언론과 재벌의 우호관계는 비단 광고만이 ‘매개체’가 아니다. 공동사업이나 행사 등의 협찬을 통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재벌이 언론의 프로그램 제작과 기획취재에 직접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각종 문화사업에도 상당액의 협찬금을 지원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이를 명확히 확인시켜주고 있다.

최근들어 방송의 경우 협찬의 대형화와 이에 따른 여러가지 부작용이 지적되고 있어 규제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반면 신문의 각종 협찬은 그 내용과 규모가 좀체로 알려지지 않았다.

신문에 대한 재벌의 협찬은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떻게 이뤄지는지, 협찬에 따른 문제점은 없는지 중앙 4대 일간지의 95·6년 협찬내역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방송에 대한 재벌의 협찬이 프로그램 제작지원에 집중되고 있는데 반해 신문은 주로 문화 및 스포츠 사업에 몰리고 있다. 신문사들은 많게는 연간 20여건 적게는 5건 안팎의 협찬행사를 벌이고 있다<표 참조>. 협찬행사는 주로 동아, 조선, 중앙, 한국일보 등 규모가 큰 4개 신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가장 많은 협찬행사를 벌이는 신문사는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마라톤, 야구, 수영, 사이클에서부터 바둑, 연극, 사진, 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20여건에 달하는 다양한 문화 및 스포츠 행사를 매년 열고 있다. 동아일보는 현대와 대우가 각각 3건을, 쌍용이 2건 가량의 협찬을 하고 있다.

그 다음은 조선일보. 외형적인 규모는 동아일보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뮤지컬대상과 바둑대회로선 최대 액수의 상금을 내건 LG배 세계기왕전을 신설하는 등 약진세가 두드러진다. 단발성이긴 하지만 대규모 공연행사도 많이 유치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현대와 대우가 각각 2건씩의 협찬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사세에 비해 협찬행사가 적은 편이다. 그 이유는 중앙일보가 삼성그룹의 계열사라는 이유로 다른 재벌들이 협찬을 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앙일보 행사의 대부분은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협찬사다.

다른 신문사들이 협찬행사를 대부분 적자를 감내해야 할 사업으로 보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일보는 다소 독특하다. 일종의 독립채산제 방식을 적용해 경영수지 개선에까지 연결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문사가 대규모 행사를 벌이기 위해서 재벌의 협찬은 필수적이다. 이 행사들은 대부분 비영리적 성격이기 때문에 그 예산을 신문사의 재정수익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김정웅 사업국장은 협찬사업에 대해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문화행사를 개최하려는 신문사와 이런 행사를 통해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기업체의 요구가 서로 맞아 떨어져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LG그룹 홍보실 이상민 부장도 “기업의 입장에서 협찬행사는 광고와 달리 기업의 이미지를 고급화시키고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설명과 달리 협찬행사를 둘러싸고 신문과 재벌의 노림수가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협찬 문제와 관련 재벌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한 일간지 사업국의 간부는 이렇게 털어놨다. “실무 담당자끼리 만나서 정식으로 협찬을 요청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신문사의 국장이나 이사급들이 재벌기업의 안면 있는 사장이나 이사를 만나 부탁을 해야 성사가 된다. 성사가 되더라도 재벌측에서 말이 문화사업을 통한 기업PR이지 노골적인 PR을 요구할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클래식한 문화사업은 꺼려하고 인기 있는 팝문화에만 협찬을 하는 경향도 많이 늘어났다.” 다른 관계자는 “과거엔 협찬하는 기업에서 표도 많이 팔아줬는 데 지금은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 재벌기업은 그 나름대로 불만이 많다. 한 대기업 홍보관계자는 “인풋(in-put)만 있고 아웃풋(out-put)이 없는 것은 홍보의 ABC가 아니다. 우리 입장에선 문화사업 지원을 통한 이익의 사회적 환원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기업홍보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신문사들이 협찬을 받고도 기업을 홍보해주는 데 너무 인색하다. 몇 차례 내는 사고의 하단에 협찬사를 밝히고 있을 뿐 행사내용 기사에서 협찬사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대기업이 봉인가. 받은 만큼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신문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렇게 서로의 노림수가 엇갈리다 보니 신문은 재벌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협찬행사에 대해선 손을 뗄 궁리를 하게 된다. 재벌은 행사의 내용보다 어느 언론사가 기업홍보를 잘해주는가에 따라 협찬을 선택하는 경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그렇지 않아도 재계 논리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을 받는 신문 지면을 더 왜곡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한 신문의 경우 협찬사 사장 인터뷰를 게재하기도 하고 이에 상응하는 홍보성 기사를 실어주었다. 또 상대편 행사를 헐뜯는데 지면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협찬행사의 구체적 예산규모는 어떻게 되는가. 신문사와 재벌들은 이 부분을 대부분 비밀에 부친다. 어떤 행사에 대해 얼마만한 협찬금이 오갔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한 관계자는 “협찬금이 공개되면 언론사마다 다른 협찬액수를 둘러싸고 잡음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며 비공개 이유를 밝혔다. 다만 신문사 결산자료 상에 사업비 항목으로 나타난 액수를 보고 대략적인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사업비 항목엔 협찬금 외에도 행사 수입이 함께 포함돼 있어 협찬의 규모를 정확히 알수 없다.

95년도 결산자료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40억8천만원의 사업수입을 올리고 39억2천7백만원의 사업비용을 지출해 가장 큰 예산규모를 나타냈다. 조선일보는 약 1억5천만원 가량의 흑자를 기록했다. 다음은 한국일보로 36억8천3백만원의 사업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사업비용으로 얼마나 지출했는지는 결산자료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동아일보는 행사의 종류수에 비해 사업예산 규모는 조선일보의 절반 가량밖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21억4천만원의 사업수익을 올리고 27억2천만원을 지출해 5억8천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중앙일보는 결산자료상 54억8천6백만원의 사업수입과 9억6천만원의 사업비용을 기록한 것으로 돼 있으나 호암아트홀 등의 예산이 포함된 것을 감안할 때 이 수치로 협찬행사의 규모를 가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신문사의 협찬 규모는 방송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재벌기업이 방송사의 주요 드라마에 협찬한 액수를 살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삼성이 KBS ‘프로젝트’에 30여억원을, 현대가 SBS ‘아스팔트 사나이’와 ‘모래시계’에 각각 16억원과 3억5천만원을, 한보가 MBC ‘까레이스키’와 KBS ‘인간극장’에 각각 3억과 7억5천만원을 지원하는 등 단일 프로그램의 협찬액이 전체 신문사 사업수익을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재벌기업의 협찬은 점점 신문으로부터 멀어지고 방송쪽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점은 신문사 사업국 관계자들도 시인하는 대목이다. 재벌의 협찬이 방송쪽으로 몰리고 있는 까닭에 대해 한 관계자는 “신문에 사고 한번 나가는 것과 방송의 스팟뉴스 3, 40초 나가는 것의 효과는 비교가 안된다”며 “실제로 스팟뉴스의 광고효과를 생각할 때 협찬이 광고비보다 더 저렴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드라마 제작 지원 등의 협찬은 자사 제품을 극 내용 가운데 소품등으로 활용해 간접적인 광고 효가를 배가하는 이중의 소득을 거두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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