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분명 쇼의 천국이다. 대통령이 깜짝쇼를 좋아한대서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을 들러리 삼아 세기적인 쇼를 연출한 실력이니 우리나라를 쇼의 본고장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전두환씨에게 내려진 사형 선고. 그것이 사람들을 현혹하는 쇼와 환락의 천국 라스베이거스라면 그 일당에 대한 밋밋한 판결은 라스베이거스를 둘러싸고 있는 황량한 사막에 다름 아니다.

단순히 형량이 낮다고 내뱉는 투정이 아니다. ‘내란 목적의 살인’에 대한 무죄 판결. 뻥튀기기를 좋아하는 언론에 의해 평가 절상된 세기의 재판이 세기적인 쇼에 지나지 않음은 ‘내란 목적의 살인’죄에 대해 줄줄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광주학살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노태우 씨가 대통령 취임 직후,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예회복시켰는데도 왜 광주 시민들이 끝까지 진상규명을 소리 높여 외쳤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재판에 높은 점수를 줄 리 만무하다.

전씨 한 사람 본보기 삼아 ‘피박’도 면하고 생색도 내기 위한 다용도 쇼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5·18이 내란이었다는 판결에서 더 나아가 ‘동족상잔’의 폭거를 지시한 원흉이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망월동에서 잠 못드는 영혼들의 마지막 염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전씨 사형 선고에 찬사를, 노씨 감형에 비난을 퍼붓기 이전에, ‘내란 목적 살인’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과 그 판결을 자초한 검찰의 부실수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일보는 꿈 속을 헤매고 있다. 도저히 시사만화의 안목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만화를 내놓고 있다. 26일자 국민만평, 여기서 국민일보는 검찰의 손을 높이 들어올리고 있다. 사형과 22년 6월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는 단순 사실만 앞세워서. 27일자 ‘딱부리.’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전씨 사형으로 빛고을 광주에 서광이 비춘다고 찬양하고 있다. 친절하게도 ‘조금’이란 단어에 방점을 찍어 전씨 사형 판결이 완결태가 아님을 애써 강조코자 했으나 등장 인물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 걸 보면 그 방점엔 별로 신경을 안 써도 될 듯 싶다.

세상 보는 안목에 빨간불이 들어온 건 국민일보만이 아니다. 27일자 한겨레그림판도 헤매기는 마찬가지다. 망월동의 영령들에게 꽃대신 전씨 사형선고를 올리는 걸로 족하리라는 내용. 과연 망월동의 영령들의 원한이 실행되지도 않은 사형 선고 한 건에 살풀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단 말인가.

만화 앞에 붙은 ‘시사’란 두 글자가 민망해지는 만화들. 27일자 문화만평의 외로운 지적을 버팀목 삼아 애써 자위해보지만 그래도 시사만화 다운 시사만화를 향한 엄청난 갈증은 가실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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