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모든 것을 던졌을 때) 회사측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으나 '그러지 뭐'라는 반응이었다. 오히려 욕을 먹기도 했다. (미디어포커스가) 없어질 때 찍소리했다는 정도밖에 안 된 것같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요새 우리 회사가 이런 곳인지 이제 알게 됐다."(김경래 KBS <미디어포커스> 기자)
"우리 회사가 요즘 빅브라더 통제하에 들어간 게 아닌가 생각한다."(정일서 KBS 라디오 PD)

KBS 기자 PD 100명 <시투> <미포> 폐지 반대 2차 규탄 기자회견

   
  ▲ KBS 기자와 PD 100여명이 11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에서 관제·밀실개편 중단을 촉구하는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11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기자와 PD 100여 명이 다시 모여 <미디어포커스> <생방송 시사투나잇> 폐지,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격주연설 정기편성, 정치적 목적의 외부 출연진 대거 하차 등이 반영된 가을개편안에 대해 코드·밀실개편을 중단하라며 입을 모아 규탄했다.

특히 이날엔 그동안 폐지 반대투쟁에 참석하지 않았던 민필규 KBS 기자협회장이 참석해 전날 오후 <미디어포커스> 개명 반대와 기자협회 차원 투쟁 동참 의견이 압도적으로 나온 여론조사결과를 소개했다. 민 회장은 "함께 힘을 모아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자"며 "밀실개편은 공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KBS는 인사희망원 제출을 거부한 <미디어포커스> 제작진 6명을 포함해 이날 중 대규모 인사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이날 집회에선 최근 KBS 뉴스에서 감지되고 있는 보수화·친정부화 움직임에 대해 직접 뉴스를 제작하고 있는 내부 기자들에게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태형 탐사보도팀 기자는 "요즘 뉴스보면 알겠지만 말들이 많이 나온다"며 최근 열린 보도위원회 상황을 소개했다.

"(KBS) 기자협회가 제기한 문제는 이렇다. 지난달 대통령 관련 뉴스가 타사에 비해 30%나 더 나간 데 대한 이유를 밝히라는 것과 이런 식의 편집이 올바르냐는 지적이었다. 지난달 22일의 경우 당시 세계경제 위기에 따라 주가가 폭락하던 날이었는데 <뉴스9>에선 '연봉 수억원 받은 사람이 1년에 몇천만원 깎는다(반납한다는 뜻)'는 내용이 톱뉴스로 보도됐다. 같은 달 30일 아침 <뉴스광장>에선 동아투위 관련 리포트, 직불금 관련 뉴스 테이프도 전달됐으나 보도에서 누락됐다. 지난 4일엔 에버랜드 공사현장 인부 사망 건으로 우리 기자가 현장에 갔음에도 <뉴스광장>에선 보도되지 않았다."

기자협회 "KBS, 대통령뉴스 타방송사보다 30%나 많아…동아투위·직불금 뉴스 삭제"제기

김 기자는 이어 "일선 기자들이 문제제기하는 것은 이렇듯 근거가 있고, 팩트가 있다"며 "지금 미디어포커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좌파방송'이라는 것 외엔 근거가 없다. 왜 좌파방송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그저 '우리 딸래미가 그런식으로 말하면 나한테 혼난다'고도 한다. 억지부리고 떼쓰고, 골지르는 식이다. 옆집 아저씨나 할 만한 소리를 기자들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사투나잇> 폐지와 관련해 새로 배정을 받은 11명의 PD들 중 진정회 PD는 "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제작본부장에 밝혔으나 본부장은 '이게 우리 KBS가 처한 현실' '제목에 연연하지 말라' '그나마 많은 것을 얻어냈다'고 답했다"며 "우리는 시사투나잇을 유지하던가, 시사투나잇 2.0, 시사투나잇 플러스 등을 요구했으나 '시투'가 들어간 명칭은 절대 안 된다는 게 회사의 입장이다. 회사는 '시사 2.0'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변경해 올렸다고 밝혀왔다"고 전했다.

   
  ▲ KBS 기자와 PD 100여 명이 11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에서 관제·밀실개편 중단을 촉구하는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김태형 KBS 탐사보도팀 기자.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 빅브라더 통제하에 들어간 듯…권위주의 만연"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격주연설과 외부 진행자에 대한 정치적 하차논란 등 라디오분야 개편에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정일서 라디오 PD는 "요즘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들의 시계만 잘도 가는 것같다"며 또 "요즘 받지 않았던 전화 자주 받는다. 라디오위원회를 요구하면 곧바로 '안건이 뭐냐'는 전화가 오고, 회의를 하자고 하면, '일과시간 중에 회의를 하면 문제된다'는 협박 전화도 온다. 우리회사가 빅브라더 통제하에 들어간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개탄했다.

정 PD는 선배들에 대해서도 "요즘 간부들은 과거 드라마 제목처럼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아니라 '미안하다.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며 "이는 그나마 미안한 생각이 있는 간부들이고, 오히려 문제는 마치 지금의 개편과정이 자신의 소신인양 밀어붙이는 간부들"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0일부터 KBS 신관 2층 로비에 세운 천막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간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이번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 개편과 관련해 "어떤 프로였느냐를 떠나 폐지의 이유조차 밝히지 않고 3주 정도를 흘려보냈다. 아마 PD와 기자가 물러설 줄 알았을런지 모른다.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두 프로그램의 폐지 소식을 듣고 힘을 합해 반대운동에 나선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외부에서 싫어한다고 폐지한다'는 것은 방송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최근 KBS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회사는 20년 전 겪었던 것과 비슷한 권위주의적 일방적 문화가 만연해있다. 사장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 급격히 2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간부 중 누구 한 사람도 제대로 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모두 사장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기 바쁘다. 기자와 PD들이 피켓팅하고 있어도 '저들이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지도 않고, 사장에 전달하는 이도 없다.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표정으로 다니고 있다. 언론사에서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덕재 PD협회장 "간부 어느누구도 제대로된 얘기 안 해…우리의 작은 싸움이 KBS 지켜낼 것"

   
  ▲ KBS 기자와 PD 100여명이 11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에서 관제·밀실개편 중단을 촉구하는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회장은 하지만 "기자와 PD들이 힘을 합쳐 작은 목소리라도 끈질기게 내고 있다"며 "작은 힘이지만 우리의 작은 싸움들이 제대로 된 문화를 지켜나가고 권위주의로부터 KBS를 지켜내는 데 큰 불씨가 되리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와 PD들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KBS 기자협회와 PD협회 공동명의로 된 선언문에서 이들은 △공영방송 채널과 편성을 통째로 정권에 갖다 바친 대통령 정례연설 즉각 중단 및 편성 책임자 징계 △매체비평의 역사를 쓴 미디어포커스 폐지결정 철회 및 타이틀 원위치 회복 △권력과 자본에 눈치보고 굴복하며 만들어진 '시사터치 오늘' 거부 및 시사투나잇 폐지결정 철회 △이병순 사장은 일련의 사태에 책임지고 사과하며 KBS를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려는 어떤 시도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KBS를 관영방송으로 되돌리는 사장과 간부들은 반드시 기록해 역사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KBS 경영협회도 지지성명 "KBS, 5공 독재시절 보도지침 떠올라"

   
  ▲ KBS 기자와 PD 100여명이 11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에서 관제·밀실개편 중단을 촉구하는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집회 뒤 본관 앞에서 결의를 다지고 있는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집회에선 KBS 경영협회가 발표한 지지성명도 소개됐다. 경영협회는 'KBS 다시 동토의 왕국으로 돌아가는가'라는 성명에서 미디어포커스와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폐지과정에 대해 "권력이 지적하면 사장이 화답하는 식"이라며 "암울했던 5공 독재시절의 보도지침이 떠오르는 것은 우리만의 기우인가. KBS가 다시 동토의 왕국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영협회는 △KBS 관제화 저지 위한 천막농성지지 △프로그램 개편안 즉각 유보 및 일선 제작진 수렴 △제작자율성 보장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 마련 △KBS 노조도 더 이상 방관치 말고, 제작자율성 보장하는데 당장 돌입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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