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언론에 대해 비판과 견제 기능은 대단히 취약한 상황이다. <미디어오늘>을 창간케 만든 현단계 우리 언론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바른 언론의 미래를 찾아보기 위해 특집 좌담의 자리를 마련했다.

때 : 4월 28일
곳 : <미디어오늘> 회의실
참석 : 강원용(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 전 방송위원회 위원장), 김중배(언론인·전 한겨레신문 사장), 최장집(고려대학교 정외과 교수·사회)



최장집: 이 자리는 새로운 매체 <미디어오늘>의 창간을 기념하여 민주주의 발전의 척도라고 할수있는 언론의 역할과 기능을 되짚어 보는 시간입니다.

강원용: 우리 언론은 신문이나 방송이나 모두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도 거기에 걸맞는 발전이 있었는지를 생각할 때 저는 회의적 입니다.

김중배: 어느 사회에도 저널리즘 비평지가 없는 경우는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그런 사회를 살아왔습니다. 우리 경우에도 과거 50년대에는 저널리즘 비평지가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을 견제하거나 비판할수있는 기제가 마련되지 못했고 언론은 자기 검증없이 독주하고 있습니다.

최: 정치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서구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한국언론을 볼 때 그 특징은 이념의 스펙트럼에 관한 것입니다. 서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보수지와 중간지, 진보적 신문이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그런 것이죠. 그러나 우리사회 언론은 이념적으로 보수지, 그것도 아주 강한 보수지들이 언론을 일면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언론과 권력, 언론과 자본이 과거에 비해 훨씬 밀착돼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보수적인 소리, 지배 엘리트의 이해 관계가 일방적으로 언론을 통해 전파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들이 언론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 최선생님께서 우리 언론이 보수적인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우리사회에 진정한 보수가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회의적입니다. 보수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쁜 것을 비판하고 자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보수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언론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반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40년 가까이 언론인의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처럼 언론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나 이승만 정권 때는 언론이 제역할을 다하기 힘든 이유가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알아서 기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언론 스스로가 거대한 이익집단이 되어서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강: 박정희 정권 때부터 언론인들이 정부요직에 기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육사출신이 많이 등용됐다고 하지만 그 숫자로 보면 언론인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한다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들중의 상당수는 권력에 접근하는 통로로 언론을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공공성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선거가 있으면 신문사는 사설을 통해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하지만 보도에 있어서는 지지하는 후보건 그렇지 않은 후보건간에 똑같이 다뤄줍니다. 거기에 비해 우리 언론은 겉으로는 후보간에 불편부당을 주장하면서 내용면에서는 편파보도를 일삼고 있습니다.

최: 과거에는 언론이 사기업으로서의 이윤동기와 선비정신으로서의 기자정신 간에 내적 갈등을 빚어왔는데 지금은 그런 갈등구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 언론의 기능중에 하나가 역사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사실적 정보를 제공하는 시민교육적 기능이라고 할때 바르게 해석한 역사적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언론은 각 신문사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저마다의 역사를 따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김: 자본주의 사회의 언론으로서 광고의 압력이란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압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상적이고 지속적인 압력입니다.

강: 저는 우리언론이 현정부를 가리킬 때 쓰는 문민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대통령이 국제화를 주장하다가 금방 말을 바꾸어 세계화를 주장하고 나섰을 때 저는 왜 이렇게 자주 말이 바뀌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이 당연히 이런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언론보도를 보면 더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 얼마전 어느 기업인이 정당에 가입하면서 이제는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경일체가 돼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말을 듣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신문에서는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언론으로서 이런 책임의 방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최: 요즘 우리사회는 기업의 논리와 정부의 논리, 그리고 언론의 논리가 점차 융합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업의 논리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신문이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은 피상적인 보도를 일삼고 보도도 천박스런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강: 언론이 자율성을 가지려면 자본과 경영이 분리돼야 하는데 우리 언론은 그것이 전혀 돼있지 않습니다. 가족끼리 지분을 나눠가지고 대를 이어 언론을 소유하는 상황에서 언론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요원한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김: 일본에 가서 북한의 세습정치를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은 일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해요. 너희들은 신문사가 몇대가 지나도록 그 집안에서 주인이 나오고있지 않느냐. 2대, 3대를 거쳐 계속해서 세습되는 것이 한국언론의 소유구조인데 나라라고 세습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론의 자본과 소유의 문제는 결국 자본주의 운영과 관계가 있습니다. 구미의 경우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상품으로서의 언론과 공적인 동기를 추구하는 언론이 서로 마찰을 빚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잘 팔려면 결국 좋은 언론상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언론이 자본의 논리와 상충할 것도 없습니다. 좋은 상품이 되려면 정확하고 유익한 정보를 줘야하는데 우리 언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 명시적인 합의는 없지만 우리사회에는 도덕적, 윤리적인 합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것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윤리적 합의가 존재하는데도 언론은 이를 존중하지도, 그에 근거하여 보도하지도 않습니다. <미디어 오늘>은 이런 문제에 대해 공론의 장을 만들어서 무너지는 사회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미디어 오늘>은 언론이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묵살하는 문제를 끄집어내서 쟁점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미디어 오늘>은 언론수용자의 입장에서 신문읽기, 방송 바로보기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미디어 오늘>을 통해 나타난 진실을 보면서 독자들이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다, 이 바쁜 시대에 우리는 언제까지 신문의 행간을 읽는 복잡한 작업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신문을 대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미디어 오늘>은 언론에 대해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시범도 보여줘야 합니다. 올바른 모범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큰 비판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언론의 소유와 경영, 편집의 올바른 관계와 구조를 미디어오늘에서 먼저 실현시키고 언론에 대해 비전을 제시했으면 하는 것도 큰 바람중에 하나입니다.

강: <미디어 오늘>의 의미를 과대평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거대한 언론에 맞서서 제한된 영향력을 행사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제한된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언론이 제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걸 고발하고 견제한다면 독자가 높은 평가를 하고 호응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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