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해외언론 정보를 신속하고 깊이있게 전달해 드리기 위해 ‘해외안테나’란을 개설합니다. ‘해외안테나’는 현재 세계 각국에 나가있는 10여명의 통신원들이 직접 취재 발굴한 생생한 뉴스로 꾸며집니다. <미디어오늘>은 앞으로 아시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 지역에도 통신원을 확보, 명실공히 세계 언론의 모든 정보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해외통신원 △러시아 〓 강혜련(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연구원) △프랑스 〓 주형일(파리5대학 박사과정) △일본 〓 이한웅(상지대 석사과정) △독일 〓 김기범(브레맨대 박사과정) △영국 〓 김예란(골드스미스대 석사과정) △미국 〓 양신규(MIT대 박사과정), 허은(필라델피아대 석사과정), 신호창(메릴랜드대 교환교수·현 전북대교수)


지난 3월1일 밤 9시14분. 노보쿠즈네츠키가의 30동 아파트에서 ‘02’번(러시아의 긴급구조요청 전화번호)에 신고가 들어왔다. 그로부터 6분 후 현장에 도착한 긴급구조대는 아파트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있는 블라디슬라프 리스치예프를 발견했다. 그는 지난해 ‘최고의 방송’으로 선정된 바 있는 <채널1> ‘아스탄키노’(4월1일부로 ‘공익 러시아텔레비전’로 명칭변경)의 대표이사였다.

그로부터 두달여, 지금까지 범인이 체포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도 희박하다. 범인과 테러원인을 둘러싼 다양한 분석이 있었지만 추론일 뿐 확실하게 나온 결론은 없다. 이번 언론인 테러사건이 러시아 사회에 던진 충격은 대단히 깊고 광범위한 것이었다. 누가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라는 문제는 러시아 언론의 현실과 변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러시아 사회에서 가장 민주화된 부분중의 하나로 언론을 꼽는다. 구소련 시절, 언론 위에 군림하던 공산당과 국가기관은 붕괴되거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언론은 과도기의 와중에서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면서 상대적으로 입지를 넓혀갔다.

언론통제 기관의 붕괴 내지 변질은 언론 내부의 분화를 가져왔다. 대상독자의 차별화는 물론 언론인 자신들도 시각과 논조에서 다양한 분파를 형성하게 했다. 여기에 정치적 노선과 정치권과의 관계 등이 얽혀 복잡한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블라디슬라프의 죽음을, 프로그램을 둘러싼 갈등구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독자적인 목소리로 방송국의 변혁에 박차를 가했던 방송인 출신의 경영자였다.

그러나 이번 테러사건은 무엇보다 언론산업구조 개편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블라디슬라프가 근무하던 방송국은 국영방송으로 형식적으론 종업원 지주제 형태의 민영화가 일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한편에선 국가 지원이 축소되고 광고가 허용된 이래 광고편성 및 광고사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돼 왔다.

블라디슬라프는 일정수준의 방송국 광고대행사 지분을 갖고 방송 광고편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광고대행사 선정을 둘러싼 이권관련설, 그에 따른 마피아 개입설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언론산업은 성장산업이다. 이미 텔레비전 프라임시간대 광고료는 10초 이하의 경우 초당 미화 1천7백불을 초과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언론산업은 ‘제4의 권부’라는 매력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본을 증식시키는 이윤추구의 도구로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블라디슬라프의 죽음을 광고시장 점유를 둘러싼 이권세력들간의 갈등과 연관시켜 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3월 한달 러시아를 떠들썩하게 했던 언론인 테러는 정치노선과 경제이권을 둘러싼 장기적인 투쟁이 격화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언론인이 테러에 노출될지 예측불허다. 그런데 이같은 테러의 위험에서 언론인들을 지켜줄 만한 능력을 국가가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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