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가 짜증나는 계절이다. 장마 뒤끝의 습기에 4부 능선을 향해 줄달음치는 온도계의 횡포가 겹쳐지면서 불쾌지수는 올라가고 몸은 축 늘어진다. 말도 없고 탈도 없이, 그저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픈 심정이지만 세상사는 그런 아량조차도 베풀지 않는다. 한여름 땡볕 만큼이나 뜨거운 사건들이 줄을 잇는다.

이열치열의 고난도 피서법을 강요하는 게 세상사의 속뜻이라면 그저 따를 수밖에. 크고 작은 사건의 무리 속에서 옥석을 가려 최대한 쟁점화시키고 그 열기에 온 몸을 내맡기는 게 현명할 듯 하다.

수해, 올림픽, 이회창 발언 파문, 김용갑 의원 영입, 국회의원 재산 공개, 하시모토의 신사 참배 등등. 4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땡볕 더위에 맞서 시사만화가 내놓은 이열치열의 재료들이다. 머리 속 온도를 끌어올리는 열기성 소재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피부 곳곳을 에워싸고 있는 땀방울을 증발시킬만큼 뜨거운 온도는 아니다. 늘상 있어왔던 구태의연한 소재들 아니면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두리뭉실한 소재들이다.

오히려 농익어 빨간 불꽃마저 피우는 소재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홍두표 KBS사장의 중앙일보 주식 소유. 근 두 주 동안 신문 지면을 뜨겁게 달구었던 신문전쟁의 아킬레스건을 이처럼 단순하고 명료하게 보여주는 소재가 또 어디 있을까. 공영방송의 수장이 재벌언론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할 대상이 특정 신문이 아니라 언론사 전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아닌가.

상속세 면세점의 인하. 재정경제원의 온갖 자화자찬성 선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을 열받게 만드는 소재임에 분명하다. 10억원은 고사하고 1천만원 목돈 한 번 만져보는 게 소원인 대다수 서민들에게 상속세 면세점 인하는 그저 양반집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기름값과 주차료, 버스요금 등등 먼지 나는 지갑 톨톨 털어내는 서민성 세금은 왕창 올리면서 가진자의 세부담은 오히려 낮춰주는 조세정책. 이처럼 열받게 만드는 사안이 또 어디 있겠는가.

쟁점을 만들지 않는 시사만화. 그 현상의 배후엔 하나의 곡절이 숨어있을 것이다. 홍두표 사장이 세간의 이슈가 됐을 때 닥칠 에스컬레이트 효과가 그들로서는 꽤나 꺼림칙했을지 모른다. 특정 신문을 죽이기 위해 쏜 화살이 언론사 전체를 향해 되날아오는 역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속세 면세점의 인하 또한 언론 재벌들에게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될 리 없는 사안이기에 굳이 토를 달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가로이 신궁에 찬탄(한국, ‘고소금’, 8월 2일)하고 축구 탈락을 애석(중앙, ‘왈순아지매’, 7월 27일)해하는 여유를 부리거나 엉뚱하게 정의의 기사(국민, ‘딱부리’, 7월 26일)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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