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전문역학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한국의 대표적인 명리학자로 손꼽힌다. 전 한국경제신문 차장을 역임한 한정희씨(신우초신역리원장).

그는 신내린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점술가도 아니다. 단지 독학으로 주역의 근본원리를 터득한 학자형에 가깝다.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역술’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의 인생유전은 단순하다.

뒤늦게 대학(연세대 법대)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들어와 기자생활(한국경제신문)을 했고 기자생활이 싫증이 날 즈음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그의 인생중 유일하게 월급쟁이였던 기자직은 15년을 헤아린다. 78년 한경 전신인 현대경제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90년 언론계를 떠났다.

그는 ‘운명병원’ 원장을 자임한다. 삶에 지치고 채인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 ‘역학’이라는 것이다.

그가 역학을 처음 접한 것은 고교시절.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살던 무당할머니의 당사주책, 손금책을 우연히 읽으면서 ‘점술’에 재미를 붙였다. 이웃들을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검증’한 결과 신통하게도 잘 맞았다.

가정형편으로 대학진학을 유예하고 군대를 다녀온후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가 찾아 간 곳은 고시원. 그러나 고시원에서 배운 것은 ‘법’이 아니었다. 졸음을 쫓기 위해 들쳐보기 시작한 역학 서적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터득했다.”

기자생활 도중 그의 점술 실력은 취재과정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동찬 코오롱 회장,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등은 사업 과정에서 그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

가령 79년 국제그룹은 목재사업 진출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는 영 아니었다. 경신년인 80년은 이른바 칼의 해. 톱니바퀴가 득세하는 해였다. 당연히 목재사업은 잘 될리 없었다. 이를 말렸고 국제그룹은 목재사업 진출을 포기했다. 그 해 동명목재 등 국내 굴지의 목재 회사들이 줄지어 문을 닫았다. 그런가하면 철강업에 뛰어들지 말라는 그의 권유를 뿌리치고 연합철강을 인수한 국제그룹은 이 탓인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는 80년 신군부 세력이 득세한 것도 역학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쇠붙이가 활개를 치는 운명이 이 해에는 담겨 있었다는 것. 이런 그를 재벌회사들이 가만 둘리 없었다. 스카우트 제의가 끊이지 않았지만 기자직을 통해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뿌리쳤다.

한경 정치부 시절에는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해 경제지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취재에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유달리 점에 약한 정치인들이 ‘신통한 기자’를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신의 과외일로 운영하던 철학원이 취재활동에 방해가 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재운은 없었다. 몇 차례 사업을 벌여 봤지만 낭패만 보았다.

그는 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사주에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법관이나 의사처럼 남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살인살생격’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부부운이 좋지 않고 만혼 성향이 강한 것이 기자들 사주의 특성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런 사주 팔자를 타고 났다는 것이다.

기자에서 역학인으로 변신한 그가 요근래 꿈꾸는 것은 교육사업이다. 경제적 운이 따른다면 ‘사람다움’에 바탕을 둔 인성교육을 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는 최근 <미리보는 우리아이 좋은 사주>(책세상 간)를 펴냈다. 이 책은 1997년 1월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각 날짜별로 태어날 3백65가지의 운수를 해설하고 각 사주에 따른 운의 흐름과 진로 지도법을 소개하고 있다. “계획임신으로 좋은 사주를 타고난 아이를 낳고 운의 흐름에 맞춰 제대로 지도하는 방법을 널리 알리기위해 책을 썼다”는 것이 그의 소감이다.

그는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한국언론이 “사회에 만연된 윤리적 타락을 부추기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언론에 대해 할말이 많은 모습이었지만 옛 정을 생각해서인지 언론문제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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