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4일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청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진행해 방통위 독립성을 해치는 보고행위와 방송 공공성을 위협하는 보고내용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방통위는 이날 업무보고 주제를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으로 잡고 4가지 중점 추진과제를 발표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선도, 방송서비스 시장선진화, 통신서비스 투자 활성화, 해외진출 및 그린IT 확산이 그것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적 합의가 필수인 방송의 공공성 유지 여부에 대해 산업적인 잣대를 일방적으로 적용한다거나, 지식경제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기타 유관부처와 협의체 구성을 내세우면서도 상대 부처의 영역을 심각하게 침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방송통신위원회  
 
'5년간 8조9000억원' IPTV 장밋빛 전망, 현실은 '막막'

방통위는 먼저 대표적 융합서비스로 내세우고 있는 IPTV에 대해서도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았다. 방통위는 "9월 중에 허가대상 법인을 확정, 10월부터 상용서비스를 개시토록 할 예정"이라며 "IPTV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도입되면 경제 전체적으로 향후 5년 간 8조9000억 원의 생산유발, 3만60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KT·하나로텔레콤·LG데이콤·오픈IPTV 등 IPTV 제공사업자로 신청한 이들은 지상파 실시간 재전송 협상 난항과 CJ미디어, 온미디어 등 MPP(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콘텐츠 공급 거부로 10월 상용화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협상 완료 전까지 IPTV 콘텐츠 사업자로 아예 등록하지 않을 예정인 가운데, MPP 쪽도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고 있다.

   
  ▲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방송통신위원회  
 
이런 이유로 IPTV도 과거 스카이라이프(위성방송)와 TU미디어(위성DMB)처럼 개국 초 지상파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나, 방통위는 여러 사정상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생산유발 및 고용창출 수치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추산 결과이나, 장밋빛 전망아래 도입된 뉴미디어의 누적적자 규모는 지난해 말까지 위성방송이 4600억 원, 위성DMB 2700억 원, 지상파DMB는 1000억 원에 달했다.

지경부·문화부·행안부와 협의체 구성, 상대부처 입장은?

방송통신시장과 IT의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고 신 성장 에너지를 제고한다며 방통위,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등 관련부처 장관이 참여하는 '범정부 협의체'를 정례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도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방통위는 이날 보고에서 지난달 말 방송통신발전에관한기본법에서 공개한 방송발전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의 통합운영을 발표했다. 정보통신진흥기금은 옛 정보통신부가 관리하다 현재는 지식경제부로 넘어갔는데, 방통위가 이를 되찾아오겠다고 한 것이다. 당연히 지식경제부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지난달 말에도 사전협의 없이 발표한 데 대해 불쾌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방송통신위원회  
 
문화부와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로 부딪히고 있다. 방통위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2009년 12월까지 민영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신설로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며 "방송광고정책의 일원화를 위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KOBACO의 관리감독체계를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문화부 산하의 KOBACO를 방통위가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문화부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며, 방송통신관련 콘텐츠 진흥에 대한 언급 역시 문화부로서는 불편하다.

행정안전부와는 행안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문제로 언론에 '신경전'이 표출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범정부 협의체'를 정례 운영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은 상대 부처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누구를 위한 방송서비스 시장 선진화인가

그러나 이들 부처간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통위가 두 번째 중점추진과제로 잡은 '방송서비스 시장 선진화' 부분이다. 방통위가 이미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추진과정에서 드러냈듯 지상파 방송과 보도·종합편성 PP에 대한 대기업 진입제한 기준(3조원)과 케이블방송 사업자간 겸영제한 기준(77개 방송구역의 5분의 1 이하)을 각각 완화키로 했다고 보고했다.

   
  ▲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방송통신위원회  
 
아울러 보도·종합편성 PP의 겸영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되, 적정범위와 시기 등은 여론수렴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 따라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지상파 방송사와 시민단체,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최상재) 등이 강력 반발하는 것으로 오는 9일 공청회가 예고돼 있으나, 방통위 뜻대로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방송권역 광역화, 지역방송 자체 콘텐츠 제작·유통 활성화를 통한 지역방송 활성화 정책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도 방송광고시장 경쟁체제 전환이라는 추진과제와 '형용모순'이다. 민영 미디어렙 도입으로 방송광고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되 지역·종교방송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게 방통위 입장이다. 그러나 지역방송 등이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로 여기는 것은 현 KOBACO 체제의 유지다.

지상파 방송 주파수, 통신사에 넘겨야 하나

방송의 디지털 전환 촉진과 통신서비스 투자 활성화 부분도 상충된다. 방통위는 일단 선발 이동통신사업자와 공공기관에서 이용중인 800㎒과 900㎒대역의 우량 주파수를 회수·재배치해, 내년 중에 신규·후발사업자에게 우선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방통위는 이날 보고에서 올해 안에 디지털방송 전환에 따른 주파수 재배치계획을 수립하고, 수요가 많은 주파수는 경매로도 배분할 수 있는 법적근거 마련을 위해 올해 안에 국회에 관련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뉴라이트방송통신센터 쪽도 시장지배력이 있는 800㎒의 SKT 독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698∼806㎒ 대역 주파수를 이동통신사 등 후발사업자에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지상파 방송사 쪽 입장과 전면 배치된다.

   
  ▲ 방송통신 선진화를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방안.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 방송사 쪽은 차세대 방송 서비스를 위한 실험용 주파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상파방송의 역할을 지킬 수 있는 주파수 분배정책 확립을 요구하고 있다. 유료방송환경 속에서 일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방송 주파수가 줄어드는 만큼 역전되는 세력관계 때문이다. 방통위 주파수관련 실무자는 현재 지상파 방송사, 학계, 연구계 등 전문가 23명이 참여하는 DTV채널배치추진협의회 운영과 관련해 운영기한을 못박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올해 안에 관련절차를 다 밟을 것임을 드러냈다.

업무보고 위해 통신사 CEO 만났나…'녹생성장'에 화답하는 '그린IT'

방통위가 지난달 21일 최 위원장 주재로 8개 주요 기간통신사업자(KT, 하나로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SK텔레콤, KTF, LG텔레콤, 온세텔레콤) CEO와 간담회를 열어 애로사항을 듣겠다며 일자리 창출을 당부한 것도 미심쩍다.

당시 방통위는 통신사들의 마케팅비와 투자비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투자보다 가입자 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며 이들을 공개적으로 압박했고, 4일 이 대통령에게는 통신시장 투자촉진이라는 일종의 성과로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통신사업자들이 방통위에 토로한 IPTV 콘텐츠 확보 중재 등 애로사항의 해결은 여러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방통위가 네 번째 중점추진과제로 보고한 '해외진출 및 그린IT 확산'은 최근 이 대통령이 언급한 이른바 '녹색성장'에 화답하는 성격이라는 의심을 벗기 어렵다. 방통위는 이런 4가지 중점추진과제를 종합해 방송통신산업 신성장 동력 육성으로 5년간 일자리 29만개 창출과, 투자활성화로 2012년까지 생산액 116조 증가를 견인하겠다고 보고했다.

언론사유화 저지 미디어행동 "최시중 위원장 사퇴하라"

그러나 이날 방통위 업무보고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방통위 청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연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은 최시중 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방통위가 스스로의 독립을 저버리고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며 "방통위 설치법 1조에 명시되어 있듯 방통위는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제고해야 하며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통해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 미디어행동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업무보고가 열리고 있는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건물 앞에서 방송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한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이영훈 지역방송협의회 공동의장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들은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할 것이 아니라 추진하려는 모든 내용을 모든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충실하게 반영한 다음 실행하면 될 것"이라며 "최시중 위원장은 자숙하는 심정으로 지금 당장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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