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판매지국 살인 사건으로 신문사간의 공방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던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모씨(33)의 아파트엔 며칠째 중앙일보가 강제투입되고 있었다.
19일 서초구 방배본동 삼호아파트 6동 김모씨(47) 집에선 동아일보 판촉요원이 버너를 들고와 판촉활동을 벌였다.

조선일보는 최근 광진구 성수동 일대에서 뻐꾸기 시계를 돌렸다.
신문업계의 과열 판매경쟁은 ‘남원당 지국 살인사건’이란 참극을 연출해 내고도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경품으로, 무가지로 왜곡되고 마침내 폭력배를 앞세운 유혈 난투극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신문시장의 파행상을 파헤쳐 봤다.


경품살포

경품 살포엔 거의 모든 신문이 예외가 없다. 경품은 부수를 늘리기 위해서도 뿌려지지만 다른 신문에 독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도 뿌려진다. 일선 판매관계자들은 이를 ‘공격적 경품’과 ‘방어적 경품’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젠 공격과 방어라는 구분이 모호할 만큼 경품이 대량화, 고가화하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컵세트, 주방용품, 의료함, 체중기 등 비교적 소액의 제품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위성방송 수신용 안테나, 에어컨식 선풍기 등 싯가가 10만원 상당에 달하는 경품도 공공연히 뿌려지고 있다. 이렇게 경품을 고가화시킨 것은 물론 재벌언론들이다. 재벌언론의 경품 살포 실태를 먼저 살펴보자.

중앙은 최근 대구시 수성구 아파트 지역과 경북 경산시 일대에서 위성수신용 안테나를 경품으로 내걸고 판촉활동을 벌였다. 서울 은평구 일대에서 구두상품권을, 부산지역 일대에선 자동차 원격조정 장치를 설치해주는 상품권을 뿌렸다. 그 밖에 에어컨식 선풍기, 가스버너, 진공청소기, 카메라를 판촉물로 활용해 왔다.

경향은 올초부터 수도권 일대에 뻐꾸기 시계를 집중적으로 살포해 효과를 봤다. 이와 관련 일선 판매관계자들 사이에서 “뻐꾸기 시계를 잡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뻐꾸기 시계 돌풍은 곧 다른 신문사에도 옮겨갔다.

경향은 최근 여름 휴가철을 맞아 서울 모래내, 성내동 일대와 평촌 아파트 지역에 트윈버너 및 가스버너를 살포하고 있다. 문화는 서울 가양동 일대에 뻐꾸기 시계를, 개포동 일대에 에어컨식 선풍기를 뿌렸다. 문화는 특히 아파트 지역에서 공공연히 비치 파라솔을 설치하고 에어컨식 선풍기를 경품으로 내건 판촉활동을 벌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가격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경품을 뿌리기는 비재벌신문사도 마찬가지. 동아는 최근 본사차원에서 영어교실, 지구촌 영상기행, 홈클리닉 영상백과 등의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해 구독시 3개월마다 1편씩 제공하는 방법으로 부수확장에 나서고 있다. 동아는 또 봉천동, 신림동 일대에서 ‘리복’ 티셔츠를 돌렸고 그외의 지역에서 미니라디오, 탁상시계, 다기능 도마 등을 돌리기도 했다.

조선은 경기 안산지역에 뻐꾸기 시계를, 파정지국에 칠기찻상을 경품으로 사용했다. 그밖에 파카글라스, 맛사지기, 전화기 받침대, 패션시계 등이 조선이 사용한 경품들이다. 한국은 인천 효성동, 부개동 일대에서 구독시 위성방송 수신용 안테나를 설치해주겠다는 전단을 뿌렸다.

무가지 살포 및 강제투입

지난 5월 한 단체가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 응답자의 70%가 1~14개월까지 신문을 무료로 구독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동아, 조선, 중앙 등 대형 신문들의 무가지 살포가 극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무가지 살포 실태는 조선이 1천6백13명이었고 동아가 1천5백52명, 중앙이 1천4백3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동아, 조선, 중앙, 한국, 문화 등 신문사의 구독계약서에 보면 아예 무가지 배달을 전제하고 일정기간까지 구독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무료구독분에 대해 환불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명시하고 있다. “무료배달을 받으시면 12개월 이상 구독료를 내셔야 합니다. 무료배달을 받으시고 12개월 이전에 이사 및 기타사유로 신문구독을 거절하시면 무료구독료를 환불하셔야 됩니다.”

1년 안에 중지를 요청할 때엔 판촉사원의 수당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렇게 독자의 일정한 동의하에 뿌려지는 무가지도 있지만 독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뿌려지는 강제투입지도 최근 극성을 부리고 있다. 또 소위 ‘알다마’로 불리는 뿌려지지 않은 채 그냥 폐지장으로 향하는 ‘잔지’들도 하루 수백만부에 이르고 있다.

폭력배 고용 및 이전투구

지난 5월25일 부산시 해운대 신시가지에선 판촉활동을 벌이던 중앙일보와 국제신문 판촉팀 간에 쇠파이프 등으로 난투극이 벌어져 중앙일보 황길태(28), 김성우씨(26) 등이 구속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조서에 따르면 중앙일보 부산지역의 판촉팀 가운데 일부가 대구 및 해운대 지역의 폭력배들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경향신문 수원지역의 모지국장은 오토바이에 신문을 싣고 가다 신원미상의 폭력배 2명에게 몰매를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경찰청은 지난 18일 수원지역 아파트 일대에서 고모씨(36) 등 폭력배 30여명이 신문사 지국들에서 신문부수를 확장한 댓가로 금품을 뜯어온 혐의를 잡고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남원당 살인사건’에도 드러났듯 폭력배 및 전과자들의 판매조직 침투는 심각한 수위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판매조직에 침투하게 된 것은 각 신문사의 판촉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판촉요원이 고수입 직종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월 평균 수입이 5백만원 이상인 사람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폭력배 출신 판촉요원들 간의 담합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부천 중동 신시가지와 일산 탄현동 일대에선 지역 폭력배들이 판매조직을 장악하고 4개 신문간에 담합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신문사 지국장은 “이들이 지역을 몇 개로 나눠 1부당 4∼5만원씩의 수당을 받고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이들은 이들 주요 4개 신문사 이외의 타사 판촉요원들의 활동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고 밝혔다. 이 지국장은 “신문판매 시장을 조직 폭력배가 완전 장악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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