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이 SBS라는 상업방송을 허가하게 된 배경은 두 갈래의 접근이 가능하다. 정권말기 정치자금 모집을 위한 ‘이벤트 사업’이었다는 것과 성장하는 방송민주화 흐름에 대한 대응 방안의 하나였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지난해 KBS노조 엄민형 정책실장은 이같은 분석틀로 ‘SBS 설립의 숨겨진 배후’라는 글을 발표해 언론계의 주목을 끌었다. 엄실장이 제기한 SBS 설립의 배경은 이렇다.

먼저 SBS의 허가가 ‘아시아나항공 허가’ ‘율곡사업’ 등과 함께 노태우 정권 말기의 대표적 정치자금 출처로 세간의 의혹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의혹은 최근까지 그 내막과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 수사과정에서도 SBS 관련 부분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지배주주 선정 과정에서 사전 내정설이 유포되고 일부 정치인이 개입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사실, 노정권 및 군부세력과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태영이 최종 낙점된 사실 등이 의혹을 푸는 실마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노정권이 88년의 KBS, MBC 방송민주화 투쟁을 지켜보면서 정권의 안위를 위해 방송구조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분석이다. 88년엔 MBC노조의 파업이 있었고 KBS노조는 88올림픽을 한달여 앞둔 시점에서 파업 직전까지 치달았다.

만일 KBS의 단체협상이 결렬돼 파업이 발생했다면 6공의 최대치적으로 내세우는 88올림픽은 치명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다.

또 국회 5공청문회 생중계와 KBS·MBC의 광주항쟁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폭발적 반응도 노정권의 방송에 대한 위기의식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됐다. 이와관련, 최병렬씨(현 신한국당 의원)는 지난해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90년 4월의 파업으로 인해 경악한 정부가 급하게 방송구조개편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송민주화 운동의 흐름을 보면서 노정권의 선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싫든 좋든 ‘자본과의 결합과 연대’를 통한 해결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SBS는 개국 이래 지금까지 친정권, 왜곡, 편파 보도와 선정주의의 대명사로 낙인 찍혀 있다. 이런 사실만 봐도 노정권의 상업방송에 대한 선택이 무엇을 노림수로 했는가는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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