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취재보도에 대한 명예훼손 판례와 관련, 미국등 외국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자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언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규정’만을 근거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노련 주최로 지난 18일 프레스센터서 열린 ‘취재보도와 명예훼손’ 토론회에서 이범수교수(동아대 신문방송학과)는 보도의 내용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인 경우 진실에 입각한 보도는 비록 그 보도로 인하여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할지라도 명예훼손죄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 외국의 일반적 판례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공직자의 공무행위에 대한 비판의 경우 그 비판의 내용에 일부 잘못된 사실이 적시되더라도 보도주체의 ‘실질적 악의’를 그 공직자가 입증하지 못하는한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김택환 언론연구원 책임연구원도 뉴욕타임즈에 대한 미 연방 대법원의 판례를 제시하면서 언론보도와 명예훼손 관계에 있어 미국 법원은 언론자유에 비중을 둔 헌법적 해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연구원이 사례로 제시한 뉴욕타임즈 판결은 64년 미국 남부 엘라바마주의 경찰책임자인 설리반이 뉴욕타임즈에 실린 흑인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모금 광고가 잘못된 사실을 게재함으로써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이 소송에서 미 연방 대법원은 “공직자에 대해 언론기관이 ‘현실적 악의’를 가지지 않는 한 명예훼손적 보도라 하더라도 헌법상 보호를 받는다”고 판결했다.

김연구원은 이처럼 외국은 언론의 명예훼손 소송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자유에 비중을 두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막연히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규정만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명예훼손 구성요건의 핵심인 ‘악의’나 ‘고의’ 문제에서도 외국은 악의를 실재적 악의와 유추적 악의로 구분하여 명예훼손의 여부를 따지나 우리나라는 단지 ‘비방’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특히 언론사에 대해서는 권력기관등 ‘강한자’들에 대한 언론자유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약한자’들인 시민들에 대한 명예훼손적 보도를 일삼는 편식적인 언론자유만 넘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본권 영역에 속하는 ‘언론자유와 인격권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제발표를 한 김택환연구원과 토론자로 나선 장호순교수(크리스천 아카데미 사회교육원)는 “취재활동이 위축되지 않는 선에서 명예훼손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김현철씨의 한겨레에 대한 거액소송 등은 언론의 취재활동을 위축시킬 염려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에 대해 강경근교수(숭실대 법학과), 안상운변호사등은 “언론인들이 공인에 대해선 무한대의 비판의 자유를 허용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취재활동 위축을 호소하기에 앞서 개인의 인격권을 존중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변호사는 “언론사가 일반 국민에게 ‘손명순여사 오보사건’처럼 잘못된 보도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었느냐”고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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