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진귀한 광경이다. 가장 튼튼한 벽돌로 자신 주위에 성역의 방벽을 쳐놓았던 언론이 스스로 그 방벽을 깨뜨리고 있다. 신문의 판촉 전쟁이 부른 살인극 이후 각 신문은 언론의 치부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고 공정거래위와 시민단체의 자성 요구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최후의 성역, 언론도 자정 물결의 한가운데로 서서히 다가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왠지 석연치 않다. 성역의 방벽을 깨뜨리는 망치 소리가 일부에 국한돼 있다. 기껏해야 ‘개구멍’이나 낼까 성역 자체를 무너뜨릴 기세는 보이지 않는다. 중앙일보, 재벌언론에만 망치질을 해댈 뿐 언론 전체를 향한 자성의 망치질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물론 중앙일보는 어떠한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독자들에게 연신 머리 조아리며 사과를 해도 부족한 게 중앙일보의 처지이다. 더욱이 신문의 주요 이슈와 호흡을 같이 해 온 시사만화가 살인극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이, 소나기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그를 향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탓할 것은 아니다.

재벌언론의 폐해를 문제 삼는 것도 그리 잘못된 건 아니다. 재벌의 언론 소유가 어떠한 부작용을 빚는지에 대해서는 그간 독자들과 시민단체, 언론학자들이 누누이 지적해 온 바 있다.
하지만 언론의 이런 질타가 좀더 큰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재벌언론에 필적하는 언론재벌, 바로 자신들의 전력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병행돼야 한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론재벌도 과열 판촉전에 한몫 거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재벌언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의 방향을 틀지워 온 사실이 부정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대부분의 시사만화는 이에 대해 말이 없다. 살인극에 대해 가장 크게 다룬 동아일보만 보더라도 자성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금품, 폭력으로 쌓은 거품 부수(‘나대로 선생’, 17일)와 땅 사재기, 중소기업 죽이기, 언론시장 물흐리기의 초1류(‘나대로 선생’, 19일)를 비난하는 만화만 있을 뿐 자성을 선도하고자 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만화도 사정은 마찬가지. 폭력을 휘둘러 구독을 강요하는 판촉 행태를 비난(세계, ‘허심탄’, 18일)하거나 살인극에 이른 과열 판촉전을 두리뭉실하게 개탄(국민 ‘딱부리’, 문화 ‘고바우 영감’, 16일)하기만 할 뿐 자성에 대해서는 비껴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신문, 그리고 시사만화는 상황 왜곡으로 가는 지름길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자성이 빠진 떠넘기기식 비판, 그래서 연출될 또 하나의 무한 경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일벌백계와 속죄양 만들기의 경계선은 자성의 몸짓에 의해 그어진다는 평범한 진실은 제쳐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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