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서울 시경 교통정보센터에 설치된 각 도로별 감시 모니터의 개수다. SBS 라디오 교통정보 시간을 맡고 있는 교통정보 이상례 리포터(31)가 매일 씨름해야 하는 상대 선수들의 숫자이기도 하다. 1대 118. 이런 불공평한 게임도 없다. 그러나 이씨는 불평하지 않는다. 가뿐히 이들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 정보 리포터 경력 4년이다. 같은 방송국의 9년차 베테랑인 안연상 리포터에 비하면 내세울 만한 경력이 아니라지만 자신감이 붙기엔 충분하다. 교통정보 리포터의 필수 덕목인 임기 응변의 순발력과 교통에 대한 전문성을 갖췄다고 자부한다. 해서 원고를 작성치 않아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다. 물론 ‘청계고가’를 ‘청계고고’라고 잘못 발음하기도 하는 등 가끔 실수할 때도 있다. 이럴때면 방송 말미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끝낸다. “부끄러워서.” 이 말을 한 후, 이 리포터는 그래도 들을만한 정도라며 겸연쩍게 웃음 짓는다.

근무시간은 오전 6시30분부터 오전 11시30분,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 오후 3시30분부터 오후 7시5분까지로 나눠 3명이 교대로 근무한다. 근무시간대는 매달 바꾼다. 이번 달 근무는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오전 10시30분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상계동 집에서 나온다. 이씨는 임신 9개월의 만삭이다.

뱃속에서 자라는 2세 때문에 운전하기에 몸이 불편하기도 하고 “내 차 한대라도 덜어야 교통상황이 나아지겠지”하는 ‘직업정신’을 발동하기도 해 출근시간엔 자가용을 몰지 않는다. 시원히 뻥뻥 뚫리는 지하철이 최고다.

서울시경 6층에 마련된 방송실에 도착하면 오전 11시30분경. 방송 담당시각인 12시18분에 맞춰 천천히 나와도 되지만 여유를 둔다. 한치 앞을 예측하지 못하는 게 오늘의 서울시내 교통상황이다. 이는 교통정보 리포터에게도 마찬가지. 교통사정으로 인한 방송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30분 일찍, 그리고 모든 방송을 끝낸뒤에도 교대자가 오기까지 기다린다. 리포터들끼리 한 약속이다.


돌발사건대비 순발력과 재치 필수적

방송실에 들어간 이 리포터는 방송실 노트를 살펴본다. 이 노트엔 그날에 있을 교통 통제 구간과 시간을 아침근무자가 기록해 둔다. 물론 정보는 경찰로부터 받는다. 오늘은 아무런 행사가 없다. 이를 확인한 후 곧바로 모니터를 주시한다. 모니터엔 서울시내 대부분의 교통상황이 나타난다. 심지어 교통순경이 운전자에게 돈을 받는 것까지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러나 모니터는 만능이 아니다. 분명 모니터를 보면 원활히 소통되는 길인데 막힌다. 교통 카메라의 감시 구간을 벗어나서 정체가 될 때다. 오보 내기 쉬울 때이기도 하다. 모니터가 더 많이 설치돼야한다는 생각이다.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애틀랜타에는 교통감시 카메라가 3백∼4백군데 설치돼 있다는 데 말이다.

오늘도 역시 교통이 원활하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들어 확실히 교통량이 줄었다. 잘 뚫리는 도로를 보고 있지만 이 리포터의 마음이 시원해지지 않는다. 기름값, 주차료의 상승이 교통량 감소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올려 봤자 돈많은 사람들에겐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어렵사리 차 한대 장만한 서민들에게만 절약을 강요할 뿐이라는 얘기다.


정확한 발음에 신경 많이 써

낮 12시18분. 정오 종합뉴스가 끝났다. ‘000 협찬의 교통정보입니다’라는 시그널이 나온다. 이 리포터는 시경 방송실과 SBS 방송사를 직접 연결, 방송을 가능케 하는 콘솔 박스의 파워를 높이고 마이크에 입술을 가까이 댄다. “낮 시간이라 전반적으로 원활한… 하지만 오목교에서 정체현상이….” 승용차 두대가 부딪혀 승강이를 벌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접촉사고 10건 중에 6∼7건은 운전자끼리 싸운다. 도로 한가운데 차를 방치해 교통흐름을 차단하고 있음에도 소리만 박박 내지르는 사람들. 이 리포터는 이게 우리 운전문화의 한계인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1분 가량의 방송을 끝내고 교통정보센터의 벽면에 부착된 사고 계량 전광판을 쳐다본다. 어제인 7월 10일 일어난 사고는 1백36건, 사망 2명, 부상 1백67명. 이달의 사고는 1천3백99건, 사망 11명, 부상 1천6백3명. 올해의 사고는 2만3천8백66건, 사망 3백56명, 부상 2만9천1백84명. 서울에서만 일어난 교통사고 건수이다.

성수대교 붕괴의 순간도 포착했던 시경 모니터를 보고 있노라면 끔찍한 사고들을 종종 목격한다. 아현고가에서의 정면충돌, 올림픽 대로의 4중 충돌 등 사상자의 피가 흥건히 고인 사고현장들. 일주일에 2∼3건씩 목격하는 대형사고들이지만 끔찍하긴 늘 마찬가지다.

교통의 돌발 변수는 사고뿐만이 아니다. 특히 시위는 언제 있을 지 모른다. 가끔 신고된 시위는 경찰의 제보로 미리 방송할 수 있지만 학생들의 시위는 예측 불가능하다. 이 리포터는 시위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정체 현상이 안타깝기만 하다. 돌발적인 시위는 교통흐름을 완전히 끊어 놓을 뿐 아니라 영향을 미치는 범위도 크다.

연세대에서 시위를 하면 세종로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들의 시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패기와 열정에 목소리를 높였던 학창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위로 인한 정체를 방송할 땐 되도록이면 시위 이유에 대해선 짧게나마 언급하려 한다. 이는 청취자에 대한 서비스이기도 하다.

방송은 10분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정체구간이 생긴 곳은 시경 정보센터에 인터폰으로 연락을 해 화면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왜 정체되는지 직접 교통 초소로 연락을 요청하기도 한다. 교통초소로 직접 연락하는 일이 잦은 것은 아니다. 상황이 생기면 시경 정보센터에서 미리 연락을 해주기 때문이다.

오후 1시03분 방송을 마치고 교통방송, MBC 등 다른 방송사 리포터들이 모였다. 7개 방송사의 방송실들은 각각 2평 남짓 공간. 서로 붙어 있어 리포터들은 쉽게 모일 수 있다. 모이면 간식거리도 나누고, 교통에 관해 토론도 벌인다. 요즘의 화제는 교통용어인 ‘차선’과 ‘차로’ 중 어떤 게 정확한 용어냐는 것. 2차선, 4차선 등 도로의 크기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차선’이란 용어가 틀렸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공간개념인 ‘차로’로 바꿔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통용어의 ‘우리말화’도 요즘의 화두다. ‘노견’이 우리말인 ‘갓길’로 바뀌었듯이 교통정보 리포터들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외래식 용어가 많다는 생각이다. 일본말인 ‘병목’도 우리말인 ‘조롱목’으로, ‘인터체인지’도 ‘들고나는길’로 바꾸자는 등 여러 의견이 나오고있다.


전문성 높일 수 있는 풍토 마련 시급

오후 2시3분 방송 “낮시간이기에 대체로 원활한 소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충동에서 약간의 지체현상이 있을 뿐 대체로 소통이 원활하다.

요즘은 출퇴근시간 정체가 심해도 어디 어디로 돌아가란 이야길 하지 않는다. 그땐 어딜가도 마찬가지에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길까지 꽉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멀리 돌아가란 두리뭉실한 말 이상은 하지 않는다.

3시3분 방송을 마친 이 리포터는 교대자인 안연상 리포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3시55분경 안 리포터가 왔다. 교통이 막혀 늦었다는 것이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교통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리포터는 교통정보 방송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희망을 갖고 살자’는 것이다.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교통체증도 이유없이 풀리는 걸 자주 본다.

인생도 이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여유를 갖고 인내할 수만 있다면 풀리게 마련인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광복이’가 될지 ‘광순이’가 될 지 모르지만 10달 인내하며 기다렸으니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겠지하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참 8월 15일이 출산 예정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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